박귀섭 씨 “무용수의 몸짓, 세상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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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박귀섭 씨
취미삼아 찍던 사진에 빠져 작가로 전향
“한국 무용수 멋진 모습 세계에 알릴 것”

박귀섭 작가의 ‘쉐도우’ 시리즈 중 2번 작품.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10명이 나무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지난해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와 미국 음반사의 한 음반 표지로 쓰였다. 박귀섭 제공
박귀섭 작가의 ‘쉐도우’ 시리즈 중 2번 작품.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10명이 나무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지난해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와 미국 음반사의 한 음반 표지로 쓰였다. 박귀섭 제공
“네가 알아서 해줘.” “형, 최대한 나답게 해줘요.”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동의 한 스튜디오.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스태프들의 올해 공연 포스터 등에 쓸 프로필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사진기 앞에 서면 긴장할 법도 하지만 단원들에게는 여유가 넘쳤다.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자기 차례가 오자 촬영보다 사진작가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발레리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박귀섭 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발레리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한 박귀섭 씨.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단원들의 여유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날 촬영을 담당한 박귀섭 사진작가(33)가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던 발레리노 출신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발레를 잘 알고, 단원들과도 친한 사진작가다. 박 작가는 2006년 입단해 2007년 뉴욕 인터내셔널 발레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도 뛰어났다. 잘나가던 그가 2010년 발레단을 그만둔 이유가 궁금했다.

“춤이 정말 좋았지만 꾸준함이 요구되는 발레 특성상 제 성격과는 맞지 않았어요.” 몇 년 전 그가 부업으로 운영하던 인터넷 쇼핑몰에 올린 사진을 본 일본 사진 에이전시가 1000만 원에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취미 삼아 찍던 사진이 인생의 새 길을 열었다.

10년 넘게 발레만 했던 그가 ‘정글’ 같은 사회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재능 있는 발레리노였지만 사진에는 초보였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 실력보다 어디서 일하는지, 어디 출신인지, 누구 밑에서 일했는지가 더 중요했어요.”

어렵사리 패션사진 쪽에서 자리를 잡아 갈 즈음 우연한 기회에 다시 발레와 인연을 맺었다. “무용복 가게를 운영하는 선배에게서 제품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당시 화보처럼 찍은 사진이 그 나름대로 유명해졌어요. 그 사진을 본 국립발레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그는 다시 발레 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길을 걷겠다고 했는데 그 분야로 복귀하는 듯한 모습이 싫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국립발레단만큼 ‘최고의 피사체’가 모인 곳은 없어요. 여기서만큼은 제 최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사진이 ‘무용수들의 몸과 동작을 제대로 잡아낸다’는 소문이 나면서 국립발레단을 비롯해 서울예술단, 정동극장, 국립현대무용단 등 많은 무용 단체들의 촬영 요청이 이어졌다. “사진작가로 나설 때만 해도 마이너스가 됐던 발레 경력이 오히려 플러스가 되고 있어요.”

이제 무용계에서 “박귀섭만큼 무용수들을 잘 이해하고 촬영하는 사진작가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를 롤 모델로 미래의 사진작가를 꿈꾸는 발레계의 후배들도 늘었다. 그는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금연 광고 캠페인 촬영을 맡았고, 그의 작품이 해외 음반과 책 표지에 사용되기도 했다.

“제가 상상한 이미지를 몸으로 표현해준 동료, 선후배 무용수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앞으로 한국 무용수들을 제 사진을 통해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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