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하루살이’ 사회에 내일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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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사회: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 인류의 미래/폴 로버츠 지음·김선영 옮김/392쪽·1만8000원·민음사

저자는 금융 부문이 비대화하면서 수익을 위해 단기적인 시각으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는 사고방식이 문화 전반에 침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가 밀집한 뉴욕 월스트리트. 동아일보DB
저자는 금융 부문이 비대화하면서 수익을 위해 단기적인 시각으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는 사고방식이 문화 전반에 침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가 밀집한 뉴욕 월스트리트. 동아일보DB
오늘 하루, 혹은 일 년만 버티고 보자는 건 개인이나 기업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긁고, 기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자사주를 사들여 손쉽게 주가를 올린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주 매입에 1140억 달러(약 136조8000억 원)를 썼다. 연구 개발에 들어간 자금의 1.5배다.

왜 이럴까.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를 충동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충동에 사로잡혀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 원제(‘The Impulse Society’) 그대로 미국 사회를 ‘충동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 파편화된 개인은 정책에 관심이 없다. 정치인은 귀에 쏙쏙 꽂히는 자극적인 구호를 앞세운다. 중도는 사라지고 극단주의만 남게 됐다.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대량 해고, 부동산 거품과 부실한 파생상품 거래로 촉발된 금융위기, 고가의 장비를 들인 후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의료 제도 등 미국 사회의 문제가 풍부한 사례와 함께 총망라돼 있다.

저자는 모두를 ‘하루살이’로 만든 주범으로 금융을 지목한다. 정확히는 주주 자본주의다. 2011년 구글은 1900명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주가가 20% 넘게 폭락했다. 들어갈 비용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투자자들이 퇴짜를 놓은 것. 1990년대 후반 록히드마틴은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투자 예정인 첨단 기술을 소개했다. 이들은 발표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이 회사 주식을 팔아치웠고, 나흘 만에 주가는 11%나 급락했다. 주식 보유 기간이 평균 18개월인 데 비해 해당 기술을 개발하려면 15년이나 걸린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기업최고경영자(CEO)의 임기도 20년 전 평균 9년에서 이제 5년으로 줄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등장한 로봇은 단순 업무만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변호사까지 위협한다. 유사한 판례, 특정 판사의 판결 성향은 컴퓨터가 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충동사회는 일자리를 없애는 ‘노 칼라(No Collar)’로 귀결돼 다수의 개인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극심해진다.

저자는 충동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공동체 회복을 제시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50년간 연구한 결과 행복을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사회적 유대의 폭과 깊이였다”는 하버드대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의 개입도 촉구한다. 강력한 정부를 둔 독일 등 유럽과 싱가포르를 거론하며. 개인에게는 현재 삶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충동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당부한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한국과도 많은 부분 겹친다. 그 원인을 충동에 따른 근시안적 사고로 본 분석틀은 흥미롭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문제를 광범위하게 나열하다 보니 분석의 밀도는 떨어진다. 분석 대상을 좁히고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데 따른 아쉬움이 남는다. 해결 방안도 이상적이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보내는 경고 하나는 확실하다. 언 몸을 녹일 장작을 패기 위해 열심히 도끼로 찍고 있는 게 대들보가 아닌지 살펴보라고.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석유의 종말’ ‘식량의 종말’이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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