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인평]거문고 음악과 논어에서 찾은 즐거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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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선율에 귀 기울이면 혼탁했던 마음 정갈해지고
논어의 가르침 읽다보면 삶의 지혜-위안 얻게 돼
바쁘고 정신없는 연말, 오히려 한가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분주하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매일 아침 신문을 대하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한 해였다. 특히 자식이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는 패륜적인 기사를 접할 때면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싶다.

일이 잘못되면 모두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가 나쁜 것은 청와대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고, 세월호 사고도 대통령 책임이고, 민노총의 과격 시위는 경찰 책임이라고 전가한다. 어느 누구도 내 책임이라고 가슴을 치며 반성하는 사람은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조용히 거문고 음악을 들으며 논어를 읽었다. 오늘날처럼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 시기에 웬, 한가한 거문고 소리냐고 핀잔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참으로 바쁜 세상이다. 그러나 바쁠수록 한가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거문고는 조선조 선비의 악기였다. 그리고 음악은 중요한 교양이었다. 선비라면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서예 수학(禮樂射御書數)을 뜻하는 육예(六藝)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이었다. 그래서 다산 선생은 거문고를 즐기며 손수 ‘악서고존(樂書孤存)’이라는 음악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조선조 선비가 숭상했던 주자학은 절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간의 기본 감정을 절제하며, 청빈을 자랑으로 여겼다. 화려함보다는 질박하고 검소한 가치를 존중했던 선비는 음악도 함부로 연주하지 않았다. 선비들은 거문고를 연주하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자는 정인심(正人心)의 자세로 거문고를 대한 것이다.

음악을 약으로 비유해 보면, 진정제의 음악과 흥분제의 음악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와 ‘영산회상’ 등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이라면, ‘라데츠키 행진곡’ ‘사물놀이’ 등은 흥분제의 음악이다.

요즘 주위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은 사람을 격동시키고 흥분시키는 음악 일색이다. 케이팝이 좋은 음악이기는 하지만 청소년을 흥분시키는 기능이 강하다. 젊은 날에는 흥분제의 음악도 좋지만 가끔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진정제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야속할 때, 주위 사람이 심하게 억지를 쓸 때, 스트레스로 온몸이 망가질 때,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선비음악인 ‘영산회상’과 가곡 명인 조순자가 부르는 ‘이수대엽’을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논어를 읽는다.

논어 첫 장을 읽으며 곱씹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하냐(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는 대목에 와서는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나는 ‘군자의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소인배는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받는다.

거문고 음악의 선비적 감성을 느껴보려면 ‘거문고회상’을 들어보면 좋다. 좀 더 현대적인 음악을 들어보려면 정대석의 ‘수리재’가 일품이다. 거문고를 가만히 듣노라면 가는 줄인 유현(遊絃)과 굵은 줄인 대현(大絃)의 대비가 신비롭다. 가는 줄이 섬세하게 거문고의 정감을 속삭이다가, 굵은 줄은 깊은 바다에 산다는 잠룡(潛龍)의 꿈틀거림으로 마음을 흔든다. 그리고 가끔 바닥을 탕탕 내려치는 대점(大點)은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거문고 음악을 들으며 논어를 읽노라면 행복하기까지 하다. 논어는 여러 책이 있지만 황병기 교수의 ‘논어 백가락’은 정말 좋다. 이 책은 우선 쉽다. 딱딱하게 논어를 그냥 해설만 한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선생님이 체득한 지혜를 함께 전하고 있다. 또한 국악 양악 고전음악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해박함과 통찰력에 절로 ‘그렇구나’ 하고 탄성이 나온다. 마치 옆에 앉아 계셔서 나에게 자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오늘을 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참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난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들은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제 거문고 음악을 들으며 ‘논어’를 읽어보자. 거문고 음악은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고 ‘논어’는 내가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거문고#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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