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 록을 만나니, 세계가 깜짝 ‘귀 쫑긋’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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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넘어 ‘뉴제너레이션’으로… ‘국악 2.0’ 시대

《 성난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강렬한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가 만드는 거대한 소리의 벽을 배경으로 거문고와 해금 연주가 신경을 긁고 두드린다. 이따금 이 벽을 뚫고 가세하는 피리와 태평소의 음률은 귀곡성 같은 음악에 처연함을 더한다. 3인조 국악-록 밴드
잠비나이의 음악이다.

세계가 놀랐다. 지난해 잠비나이는 미주와 유럽, 남미의 14개국 38개 도시를 돌며 56회 공연을 펼쳤다. 올해 5, 6월에도 유럽 12개 도시를 찍었다. 해외 팬덤이 강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도 못 이뤄낸 성과다. 이들의 무대는 월드뮤직 그룹이 모이는 워매드(WOMAD) 같은 축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스킬데(덴마크), EXIT(세르비아) 같은 록 페스티벌에서 더 많은 러브콜이 쏟아진다. 세계 진출 3년차인 내년엔 더 큰 뉴스가 있다. 잠비나이 2집이 내년 3월 영국 유력 음반사를 통해 전 세계 동시 발매된다.

신세대 국악이 떠오른다. 1970년대 이후 이어져온 사물놀이와 재즈, 25현 가야금으로 재해석한 비발디 등 기존 퓨전국악의 물길에서 좀 비껴 있다. 이전 세대를 뛰어넘는 ‘국악 2.0’은 대체로 서울 홍익대 앞 록 클럽과 더 친하다. 해외 공연 에이전시와 직접 계약을 맺거나 미국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같은 해외 쇼케이스 무대에서 현지 록 밴드들과 경쟁한다.》

5월 서울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 공연한 국악 록 밴드 잠비나이. 피리, 해금, 거문고를 전공한 멤버들이 뽑아내는 음악은 뜻밖에 헤비메탈에 가깝다. 여러 음향이 융해되는 모양새는 양악기와 국악기를 물리적으로 섞던 이전의 ‘퓨전 국악’과 다르다. 국립국악원 제공
5월 서울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 공연한 국악 록 밴드 잠비나이. 피리, 해금, 거문고를 전공한 멤버들이 뽑아내는 음악은 뜻밖에 헤비메탈에 가깝다. 여러 음향이 융해되는 모양새는 양악기와 국악기를 물리적으로 섞던 이전의 ‘퓨전 국악’과 다르다. 국립국악원 제공
○ 전공은 한예종서 국악, 활동은 헤비메탈 음반사에서 시작

잠비나이는 멤버 3명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사 출신이지만 바세린, 삼청교육대 같은 무자비한 헤비메탈, 하드코어 밴드들의 집합체인 GMC레코드란 음반사에서 데뷔앨범(‘차연’·2012년)을 내고 활동했다. 피리, 생황, 가야금, 양금 연주를 현대적으로 섞어내는 2인조 ‘숨’, 인디 록과 우리 소리를 결합한 밴드 ‘고래야’와 ‘타니모션’에 이르기까지 국악 퓨전 팀들의 해외 시장 진출이 괄목할 만하다. 잠비나이와 숨은 네덜란드의 전문 에이전시인 어스비트와 계약을 맺고 한 번 해외에 나갈 때 여러 도시를 두루 돌고 온다.

숨 역시 국악기 전공자 둘로 구성됐지만 현대음악의 어법을 화학적으로 껴안았다. 이들 무대의 압권은 재즈 색소폰 대신 피리가 행하는 자유롭고 공격적인 솔로 연주다. 국악기 중 유일한 화성악기인 생황 연주는 리코더나 플루트,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케 한다. 피리나 생황 연주에 독특한 배경색을 칠하는 건 록이나 서양 현대음악처럼 편집증적인 저음 오스티나토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가야금 연주다.

고래야, 타니모션은 국악연주자들이 인디 록 밴드 멤버와 의기투합한 경우다. 타니모션을 이끄는 작곡자 겸 리더 연리목은 장기하도 한때 몸담았던 록 밴드 눈뜨고코베인 출신이다. 고래야는 국악기 연주자 네 명이 브라질 타악기 주자, 록 기타리스트와 손잡고 만들었다.

○ 인디 록적인 창작 방식+해외 프로모터 방한 러시

1970년대 김덕수 사물놀이를 필두로 푸리, 슬기둥, 숙명가야금연주단, 김수철, 김용우 등이 국악의 현대화에 앞장섰지만 지금의 흐름은 그때와 또 다르다. 전통을 중시하는 일부 국악인들은 “악기만 우리 것이지 저들을 국악의 갈래로 보기 어렵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잠비나이의 디렉터 김형군 씨는 “잠비나이의 경우, 멤버 각각은 국악을 전공했지만 전통적 작법에 묶이지 않고 동시대 음악의 흐름 안에서 확고한 취향을 갖고 그것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 창작으로 발현한다”면서 “서울아트마켓, 울산의 에이팜(APaMM·아시아태평양국제뮤직마켓), 뮤콘(서울국제뮤직페어) 같은 견본시장에 최근 해외 유력 마케터들이 몰리면서 국악 퓨전 팀들이 해외진출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의 보존’에 중심 가치를 둔 국립국악원도 문턱을 낮췄다. 국악원은 대중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국악 작곡 아카데미를 지난달 처음 열었다. 가수 이한철부터 재즈계에서 명망이 있는 김성배, 신현필, 이선지, 이지연 같은 연주자들까지 14명이 10월까지 매주 수요일 수업을 듣는다. 대중음악에 우리 전통 작법을 실험하기 위해서다. ‘민요의 지역적 특징’ 같은 개론부터 ‘산조 작곡 기법 분석’까지 16주차 과정을 수료하고 11월 4일엔 졸업연주회 격인 작곡 시연회도 연다. 국악원은 이 프로그램을 매년 정례화할 계획이다.

국악원은 5월엔 잠비나이, 불세출 등 젊고 실험적인 16개 팀을 초청해 공연 시리즈 ‘빛나는 불협화음’도 열었다.

○ 서도 소리+파키스탄 카왈리…계속되는 ‘탈선’ 실험

최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10월 8∼12일) 소리프런티어 예선에서도 독특한 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심사 끝에 결선 진출에 성공한 남성그룹 ‘딸(TAAL)’은 단연 튀었다. 파키스탄 전통음악과 서도 소리를 능청스레 넘나드는 남성 보컬들을 건반악기 하모니움과 타악기 타블라 연주가 받쳤다. 리더 그나성(가명) 씨는 “국악을 전공했지만 파키스탄 전통음악 카왈리에 빠져 현지에서 배워온 뒤 그 즉흥성과 리듬이 서도 소리와 통한다는 데 착안해 둘을 섞기 시작했다”고 했다. 재즈와 국악을 섞어낸 ‘세움’의 멤버 김성배 씨는 “재즈와 국악을 물리적으로 결합하기보다는 자유 즉흥 연주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악#록#뉴제너레이션#국악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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