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르르∼∼’ 매미도 따라 부르는 보로딘의 교향곡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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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딘
더운 여름날, 창을 열고 보로딘의 교향곡 2번 4악장을 듣고 있었습니다. 차르르∼∼ 하는 경쾌한 악기 소리가 딱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창 밖에서 차르르∼∼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무엇일까요. 음악을 틀기 전 조용히 있던 매미들이 교향곡에 나오는 탬버린 소리를 받아 노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교향곡과 매미들의 교감이라니! 런던 올림픽이 열린 해이니까,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줄곧 잊히지 않는 즐거운 추억입니다.

교향곡에 탬버린이 나오는 것부터가 흔한 일은 아니죠. 이 작품에는 트라이앵글도 나옵니다. 어릴 때 배운 ‘리듬악기 놀이’라는 동요가 기억나십니까. ‘탬버린은 찰찰찰, 트라이앵글은 칭칭칭’ 하면서 조그만 입으로 합창하던 그 노래의 주인공 악기들이 동원돼 한바탕 신나는 합주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보기 쉬운 탬버린이지만 어린이의 리듬교육이나 노래방에서 흥을 돋우는 데만 쓰이는 악기가 아닙니다. 트라이앵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엄연히 오케스트라에서 쓰이는 타악기로 특히 고전시대나 중동, 이베리아의 이국적 정서를 강조할 때 잘 쓰입니다. 그런데 왜 교향곡에 이 악기들이 등장했을까요. 그것은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이 그의 오페라 ‘이고리 공’과 같은 시기에 쓰였다는 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은 러시아의 영웅이 초원지대의 이민족을 토벌하러 갔다가 포로로 잡힌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보로딘은 이 곡을 쓰다가 ‘오페라에 넣기 적당하지 않다’고 여긴 부분들을 교향곡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고리 공’에도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등을 통해 초원의 이국적 정서를 그려내려 했는데, 그런 시도가 같은 시기에 쓰인 교향곡에도 투영된 것입니다.

마침 이렇게 더운 계절에는 해가 떨어지고 난 뒤 급격히 한낮의 열기가 식는 초원지대의 꿈을 꾸어보곤 합니다. 우리 민족도 먼 옛날에는 초원을 다니면서 머나먼 서역의 문명과 교류했다고 하죠. ‘매미들도 이해하는’ 보로딘의 작품을 들으면서, 갑갑한 방을 벗어나 넓은 대륙의 들판으로 상상의 날개를 옮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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