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 “비로소 가벼워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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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주제곡 ‘날아’ 부른 이승열, 홈리코딩으로 5집 ‘SYX’ 발매

이승열은 실험적인 신작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라고 했다. 플럭서스뮤직 제공
이승열은 실험적인 신작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라고 했다. 플럭서스뮤직 제공
전쟁, 빈곤, 고난, 불평등…. 삶과 세계의 천형에 지쳐 연옥에 닿았을 때, 만약 신이 이런 목소리로 노래한다면 그를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미생’의 주제곡 ‘날아’의 목소리, 싱어송라이터 이승열(45). 2008년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가 애절한 록으로 재해석한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귀여운 댄스그룹의 노랫말을 다시 읽어보게 만들었다. 먹먹한 슬픔의 회청색 하늘을 가르는 날개처럼 이승열의 목소리는 강인하게 여리며 단단하게 떨린다.

1994년 모던 록 듀오 유앤미블루부터 2003년 이후 네 장의 솔로앨범까지 평단의 극찬을 놓친 적 없는 이승열이 2년 만의 신작, 5집 ‘SYX’를 냈다. 모험을 했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을 고용해 녹음하지 않았다.

“악기 연주, 녹음, 믹스…. 제작 공정의 90% 이상을 30m²쯤 되는 저희 집 방안에서 해결했어요. 저는 노래 구상 단계에서부터 편곡의 디테일을 촘촘히 짜두는 스타일인데, 그리 애써 그린 스케치를 다 버리고 재녹음을 하는 기존 작업방식에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기타와 베이스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컴퓨터 가상악기로 드럼 소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부터 해둔 음악적 스케치는 ‘승열’의 이니셜인 ‘SY’에 별 의미 없는 ‘X’를 붙인 컴퓨터 폴더 ‘SYX’에 들어 있었다. 이걸 그대로 뼈대 삼기로 했다. 그래서 앨범 제목도 그냥 ‘SYX’다. 5집인데 제목이 ‘식스’로 읽히는 부조리도 그가 원한 바다.

아홉 곡 중 앨범의 등뼈에 해당하는 두 곡이 세월호 참사를 노래했다. 리듬과 반복 악절의 달짝지근함이 저음부와 화성 진행의 불길함을 만나 노이즈 위를 출렁이는 ‘a letter from’. 블루스 록에 타령을 섞은 듯한 악곡에 ‘Crazy, motherfucking crazy!’란 가사만 반복적으로 얹은 ‘come back’.

이승열은 “앨범 전체에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가 담겼다”고 했다. 작은 방을 헤엄친 이 남자의 궤적은 ‘노래 1’에서 이렇게 여울진다. ‘노래에 실려 가네/숱했던 치기여…아름다운 버림/빛의 질서여.’

전작 ‘V’(2013년)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942년)의 구절을 삽입했던 그는 “이번엔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소리와 분노’(1929년)가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3분짜리 달콤한 혼돈의 연쇄로 된 이 앨범은 그의 성스러운 목소리 덕에 ‘어렵지만 자꾸 들추게 되는 소설’처럼 귀를 끈다. 그는 “비로소 가벼워졌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승열#미생#날아#syx#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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