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羊’되기보다 가슴속 불을 지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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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10여일 만에 3쇄… 저자 윌리엄 데레저위츠 인터뷰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7막 7장’(1993년)부터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하버드 새벽 4시 반’까지….

국내에 출간된 수많은 책 속의 미국 하버드대는 한국 대학이 본받아야 할 이상(理想)이자 학부모들에게 ‘꿈’ 같은 곳이다. 내 자식이 ‘스카이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해도 뛸 듯 기쁠 텐데 아이비리그(미 동부의 8개 명문대)에 들어간다면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는가? 그런데 최근 아이비리그 예찬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 발간돼 화제다. 출간 10여 일 만에 3쇄까지 찍었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

제목은 ‘공부의 배신’(원제 Excellent Sheep·도서출판 다른). 저자는 10여 년간 예일대 교수로 영문학을 가르친 윌리엄 데레저위츠 씨(51)로 지난해 이 책을 통해 아이비리그 엘리트들을 ‘양떼’에 비유해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 역시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현재도 미국 주요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 그는 수십 년간을 미국 엘리트 교육의 현장에 있었다. 10일 e메일로 그와 교육방담(敎育放談)을 나눴다. 아이비리그를 비판한 이유부터 물었다.

“대학 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의 극심한 ‘허기’가 느껴졌어요. 목적의식과 방향성에 대한 허기,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제시해줄 길잡이에 대한 허기, 나아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도 좋을지에 대한 허기까지….”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 윌리엄 데레저위츠 전 예일대 교수는 부모들에 대한 조언으로 “자녀가 당신이 시키는 것만 하도록 만든다면 성공할 기회를 뺏는 것” 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공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 윌리엄 데레저위츠 전 예일대 교수는 부모들에 대한 조언으로 “자녀가 당신이 시키는 것만 하도록 만든다면 성공할 기회를 뺏는 것” 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공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3, 4개 외국어는 기본이고 공부와 스포츠, 음악에 능하고 봉사활동까지 충실한 슈퍼엘리트임에도 불안과 두려움, 공허감에 시달린다고 그는 강조했다. “약간만 실수를 해도, 가령 A-만 받아도 정체성에 타격을 받아요. 정신적 회복력도 없고 내면의 힘도 없다 보니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그는 또 “이런 문제는 명문대의 입시 과정이 원인”이라며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학업, 운동, 예술, 봉사, 리더십 등 끝없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어린 시절을 통째로 바쳐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데레저위츠 씨는 이어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것, 어른들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기엔 형편없이 부족하다. 마치 양처럼”이라고 했다.

다소 주입식이라도 청소년기에는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이를 기반으로 창의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는 단호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지식의 습득, 즉 정보를 암기하는 것은 배움과는 다른 일이에요. 배운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겁니다. 교육은 불을 지피는 일이지, 양동이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 교육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고 알고 있어요. 심지어 미국 내 한국 이민자들 사이에는 ‘크램 스쿨(cram school·입시 준비 학원)’ 문화가 있습니다. 대학들은 ‘내 아이가 서열 몇 위에 속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공포를 마케팅 전술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명문대를 가야 성공하는 데 유리하고 인생이 편하다’는 생각이 한국에선 지배적이라고 하자 그는 “편한 삶이 좋은 대학을 나와서 부자가 된다는 뜻인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그것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상적인 답변이 아닌 ‘한국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부탁했다.

“최고의 학교가 반드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한다고 볼 수 없어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명문대만 좇을 궁리를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배울 곳을 찾아야 해요. 당신이 가는 곳이 당신의 미래는 아닙니다(Where You Go is Not Who You‘ll Be).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물질적 성공만 놓고 보더라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는 문제와 크게 상관이 없어요. 그보다는 자신의 지성, 성실함, 창의력, 유연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자질은 명문대를 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길러지는 게 아닙니다.” 그는 “다양한 학생들에게 맞는 다양한 학교가 있을 뿐 최고는 없다. 자신에게 최고인 게 최고”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공부의 배신#윌리엄 데레저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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