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봄을 알리는 꽃 매화, 옛 선조들은 자연 통해 마음을 수양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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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시를 읽다’를 지은 신익철 씨

‘추위를 무릅쓰고 매화 꽃송이 함께하여/밤을 비추는 구슬의 광채와 빛을 다툰다/넘실넘실 환한 빛의 바다 배를 띄울 만하고/ 맑디맑은 푸른 물결 갓끈을 씻을 만하네.’

조선 후기 유명 문인화가 이윤영(1714∼1759)이 ‘빙등조매(氷燈照梅)’를 경험하며 지은 한시다. 18세기 사대부들의 매화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빙등조매’는 즐기는 과정부터 흥미롭다. 마음이 맞는 지인들과 서재에 모인 추운 겨울밤, 물을 부은 백자사발을 밖에 내놓는다. 잠시 후 언 사발을 가져와 얼음을 파낸 뒤 불 밝힌 초 하나를 가운데 세운다. 얼음을 뚫고 영롱한 빛을 쏟아내는 빙등 옆에 매화를 놓으면 은은한 달빛을 머금은 매화를 보는 것 같다. 선비들은 이를 지켜보며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매화 감상법을 살펴보고 이들이 지은 시를 통해 내면까지 들여다본 역작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18세기 들어 매화 감상법이 다양해진 현상을 주목했다.

―조선 사대부들이 매화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매화가 꽃망울을 틔우며 봄을 알리는 존재라고 여겼다. 성리학에서 봄을 알리는 것은 만물이 음기에서 양기로 순환하는 생생지심(生生之心)의 상징으로 중시된다. 겨울 추위를 이겨 낸 매화꽃을 세상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초심을 지키는 절개처럼 여긴 측면도 있다. 선비들이 설중매(雪中梅)를 보려고 눈길을 헤치며 산에 힘겹게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은 절명하는 순간까지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개인적으로도 매화와 인연이 있나.

“부모님이 전남 함평에서 30년 동안 매실을 재배하셨다. 나도 20년 넘게 집에서 매화를 키웠다. 올해는 2월 초쯤 꽃이 피어서 그달 하순쯤 졌는데 거실까지 매화 향이 그윽하더라. 매실주와 함께 즐기면 그만이다.”

―선비들의 매화 감상법이 무척 다양했던데….

“빙등조매뿐만 아니라 화분에 넣고 곁에 두는 분매(盆梅), 별도 공간에 놓고 감상하는 감매(龕梅),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자연 상태의 모습을 즐기는 지매(地梅), 밀랍으로 매화 모양을 만들어 즐기는 윤회매(輪廻梅)까지 다채로웠다. 이 중 빙등조매와 윤회매는 18세기에 생겨 그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인가.

“영·정조 시대 당시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으로 사대부들의 취향과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매화를 향유하는 방식도 풍성해졌다. 또 신분의 장벽이 조선 초기보다 낮아져 사대부와 중인이 교유하게 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경화세족(서울에 살면서 세도가 높았던 최상류층) 조재호는 서얼 출신 시인들과 ‘매사(梅社)’를 조직하고 매화에 대한 감상 시 200수를 짓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마음까지 수양한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았으면 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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