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김중업박물관 절묘한 재생… 고인의 건축 뼈대에 ‘문화’ 입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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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의 ‘공간 살리기’
광명 업사이클 센터, 소각장 활용… 청주 동부창고, 연초창 리모델링

경기 안양시 김중업박물관 6개 동 중 하나인 김중업관. 외관을 보전하면서 내부공간만 프로그램에 맞게 변형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제공
경기 안양시 김중업박물관 6개 동 중 하나인 김중업관. 외관을 보전하면서 내부공간만 프로그램에 맞게 변형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제공
지난해 3월 개관한 경기 안양시 ‘김중업박물관’은 뜻밖의 사연이 중첩돼 발생시킨 기이한 공간이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해 1959년 완공한 제약회사 유유산업 공장 건물이 띄엄띄엄 들어선, 완만한 기울기의 1만6243m² 언덕배기 대지. 기왓장 올린 목재 배흘림기둥이 아닌 철근콘크리트 기둥 잔재가 마치 유적처럼 뼈대를 드러난 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세상 떠난 건축가를 기리는 공간이 전무한 국내 상황을 돌이킬 때 이 광활한 공원은 얼핏 생뚱맞은 느낌마저 안긴다.

안양시가 주최한 설계경기에서 2009년 당선된 최초 계획안은 19개 동의 건물 중 13개를 재활용해 기념관, 전시공간, 작가들의 거주공간 겸 작업실, 커뮤니티센터, 공연장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010년 8월 고려시대 안양사 유구가 발견되면서 계획이 수정돼 건물 6개 동만 남기고 철거되거나 일부 구조물만 남겼다. 건물 외장재가 공사 도중 임의로 바뀌어 ‘건축가 역할을 무시하고 지은 건축가 기념관’이라는 비판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주민에게 넉넉한 쉼과 배움의 공간을 선물한 것은 틀림없다. 허술한 구석이 적잖은 건물 곳곳 이음매와 문화콘텐츠 프로그램을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이다.

1962년 울산산업단지가 국내 최초의 산업단지로 건설된 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용도 폐기된 유휴 공간의 혁신적 재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드웨어 공간의 리모델링에만 치우쳤던 시선의 폭을 넓혀 개발 주체가 공간의 용도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지역주민, 전문가, 예술가의 견해를 반영해 합의를 통한 공간의 쓰임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은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상반기 완공을 앞둔 경기 광명시 ‘업사이클 아트센터’는 쓰레기 소각장에 대규모 홍보관을 신설해 전시와 교육 활동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공간재생 프로젝트다. 계획 과정에서 광명시에 거주하는 청소년과 가족을 대상으로 체험과 공연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해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

2004년 폐업한 연초제조창 건물 7개 동을 리모델링해 목공예 등 예술품 창작 활동을 위한 커뮤니티 스튜디오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충북 청주시 ‘동부창고’ 프로젝트도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다. 이 역시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삼아 쓸모없어진 옛 산업단지 공간을 재생시키는 계획이다. 3만4522m² 규모의 대지에 연초제조창이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 개발 당국은 현대 건축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충분한 적벽돌과 금강송 목조트러스 구조의 현 건물 원형을 최대한 보존할 예정이다. 공연활동과 요리강습 등 지역주민이 요구하는 공간 활용 프로그램은 4월 개시할 ‘소셜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확대시켜 나갈 방침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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