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당한 사람들, 늘어나는 인간 덩굴…‘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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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지음
302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던 남자는 어느 날 건물 벽을 휘감은 녹색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미화원들이 학교로부터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고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남자의 팔다리는 녹색 줄기로 변형돼 건물을 휘감았고 녹색으로 변한 얼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의 딸은 패션몰 고객상담실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딸도 다른 계약직 동료들과 회사에서 해고된 날 매장 한가운데 기둥을 휘감은 덩굴식물로 발견된다.

이렇게 도시에는 절규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는 인면수(人面樹)가 하나둘 늘더니 덩굴 숲을 이룬다. 도시의 기후는 건조한 편이라 사람들은 그저 인면수가 말라죽길 기다리며 물도 주지 않는다. 한 때 사람이었을 인면수가 말라죽고 나면 수레에 담아 버리거나 불쏘시개로 쓴다. 그들이 건네고 싶어 하는 말은 기껏해야 한 장짜리 고막의 떨림이 아닌 온몸을 써서만 들을 수 있는 그 무엇 같다. 그래서 도시는 아예 듣기를 거부한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을’들은 일터에서 잘리자 덩굴식물로 변해 버텨보지만 곧 말라죽거나 잘려나간다.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에는 이른바 ‘각자도생’하는 암울한 오늘날이 그려진다. 모든 것을 녹이는 산성비가 내리는 도시에선 “나중 가면 피차 난처해질 뿐”이라며 몸이 녹아가는 피난민을 외면하고(식우), 콜센터 상담원은 갑의 전화를 받느라 감정이 ‘피투성이’가 되고 성대결절까지 걸렸지만 하소연할 곳은 생면부지의 택시기사 밖에 없다.(어디까지를 묻다)

저자가 지은 소설집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그것’에 무엇을 놓을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불행한 일이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괴물이 되거나, 나만은 괴물이 안 되길 바라거나.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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