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나면 똑똑해진 듯한 이 느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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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열풍 속 인문서 성공 법칙 주목

‘지대넓얕’

최근 출판계에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란 책 제목을 줄인 이 단어가 화두다. 인문교양서인 이 책은 한국출판인회의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위(2월 셋째 주 기준)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출간 후 누적 판매량은 10만 부에 육박한다. 최근 발간된 ‘지대넓얕’ 2권도 종합베스트 5위에 올랐다. 한 저자의 책 두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5위 안에 든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더구나 ‘채사장’이라는 필명을 쓴 채성호 씨(33)는 유명한 인문학자나 강연자가 아닌, 무명의 신인 저자다. ‘지대넓얕’은 채 씨의 첫 책.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채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가 2011년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집필했다.

○베스트셀러 인문학의 성공 법칙

출판계에서는 ‘지대넓얕’의 성공이 “우연 같지만 우연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인문학 서적 성공 법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평가다. ‘지대넓얕’을 비롯해 ‘인문학은 밥이다’, ‘인문학 명강 시리즈’, ‘에디톨로지’, ‘김대식의 빅퀘스천’ 등 최근 2∼3년간 시장에서 호평받은 인문서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대넓얕’을 낸 출판사 ‘한빛비즈’ 권미경 편집자는 “성공한 인문학 서적을 살펴보니 개념과 개념의 연결을 통해 나무보다는 숲, 즉 큰 틀을 보여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인물 연도 이론 등 숫자나 구체적인 내용을 상당 부분 생략했다.

‘지대넓얕’ 1, 2권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문화 등 각 분야를 폭넓게 망라한다. 분야별로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각 분야가 어떻게 서로 맞물려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문체나 글의 흐름이 구어체에 가깝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는 “강의를 채록하듯 구어체로 써야 독자들이 저자와 함께 호흡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한때 수능 논술 강사로 활동했던 채 씨는 내용을 요약하고 쉽게 설명하는 데 익숙하다고 한다.

뚜렷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제목 혹은 부제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넓고 얕은 지식’ 앞에 ‘지적 대화를 위한’이란 설명이 붙는다. 최근 인기 인문서 부제를 보면 ‘통찰력을 길러 주는’, ‘상식을 키우는’ 등 실용성을 강조한다. 21세기북스 신주영 출판개발실장은 “요즘 독자는 거대 담론이 필요하지 않다. 제목에서 내 삶에 왜 이 책이 필요한가라는 의미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깊이’와 ‘인기’의 딜레마

‘지대넓얕’은 12월 출간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출판사 역시 마케팅 지원을 하지 않았다. 채 씨가 지난해 4월부터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면서 팬을 확보해 온 것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밑받침이 됐다.

동아일보가 교보문고와 함께 ‘지대넓얕’ 독자군을 분석한 결과 30대(34.2%)와 20대(25.2%) 등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젊은 독자가 59%로 가장 많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앞으로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팟캐스트를 통해 독자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가벼운 지식을 표방한 인문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문서를 주로 출간하는 한 출판사 대표는 “깊이 있는 지식을 줘야 할 인문서마저도 인터넷처럼 얕은 지식을 내세우고 있다”며 “이런 책이 실제 지식이나 자기 성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강의 기관 ‘건명원’ 원장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넓고 얕은 지식이라도 독자 스스로 거기에만 그치지 말고 자신만의 깊은 지식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지대넓얕#인문학 서적 성공 법칙#에디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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