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순수문학의 숨통인가 블랙홀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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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 등단한 소설가 심상대 씨(55)는 2013년 첫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연재할 계간지를 찾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는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서 입지를 다진 중견작가였다. 그런데도 위축된 문학 시장은 몇 년간 집필 활동을 쉰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장르소설이 연재되는 네이버 웹소설에서 2013년 5월부터 소설 ‘나쁜봄’을 연재했다. 연재가 끝난 이 작품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소설은 올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라 문학성도 인정받았다. 그는 “순수문학 시장 확장을 위해서도 웹소설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며 “지하철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최근 네이버 웹소설 출시 2주년을 맞아 현황을 발표했다. 2013년 1월 시작된 웹소설에는 정식 연재 작가 109명과 아마추어 작가 11만 명이 로맨스 무협 미스터리 SF&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작품 23만 편을 연재했다. 지난해 조회는 36억 회, 이 중 80%가 스마트폰에서 소비됐다.

네이버는 “원고료와 미리 보기 수익만으로 한해 2억8000만 원을 번 작가를 비롯해 1억 원 이상 수익을 올린 작가가 7명”이라고 밝혔다. 미리 보기는 100원 결제로 무료로 풀리기 전에 미리 작품을 보는 서비스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순수문학 시장에도 웹소설 성공이 알려지면서 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단행본으로 1억 원을 벌려면 10만 부를 팔아야 하는데, 요즘 국내 문학 시장에서 10만 부 베스트셀러는 당분간 나오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설 초판 발행 부수가 3000부에서 2000부로 줄었지만 초판이 다 팔리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해 소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평단과 시장에서 모두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도 판매량이 4만 부 수준이다.

이진백 네이버 웹소설 담당 매니저는 “출판계 불황으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일부 순수문학 출판사가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웹소설에서 연재할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고 밝혔다.

현재 웹소설에서 실명으로 연재 중인 순수문학 출신 작가는 1997년 등단한 소설가 이재익 씨(40·SBS PD)가 유일하다. 그는 종이책으로 낸 소설이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자 웹소설로 자리를 옮겼다. 미스터리 ‘복수의 탄생’에 이어 로맨스 ‘마성의 카운슬러’를 연재 중인 그는 한 달 수입이 월 10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소설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작가가 웹소설 시장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웹소설이 순수문학 작가들에게 ‘억’ 소리 나는 숨통을 틔워 줄까.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웹소설 독자층에 장르문학 마니아가 많아 순수문학 작품에 지갑을 열지 미지수이고, 순수문학 작가들이 빠른 전개를 강조하는 웹소설 작법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클릭 횟수가 돈으로 환산되는 웹소설이 문학 본래의 의미를 해친다는 근본적인 회의도 있다.

경력 10년의 문학 편집자는 “출판 만화 작가가 웹툰 시장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듯이 순수문학 소설가가 잘 적응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그럼에도 텍스트 콘텐츠가 모바일에서 팔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오늘날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웹소설#순수문학#네이버#출판계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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