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옛 여인에 빠지다’ 펴낸 조혜란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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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쓸때 억눌렀던 끼 맘껏 풀어내 우리 古典 속 여주인공 새롭게 해석”

2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조혜란 이화여대 교수는 저서 ‘옛 여인에 빠지다’에 대해 “지루하지 않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책”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조혜란 이화여대 교수는 저서 ‘옛 여인에 빠지다’에 대해 “지루하지 않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책”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논문을 쓰다가도 이야기나 등장인물에 매료돼 감정이 움직일 때가 있어요. 그래도 논문이니까 꾹 참고 건조하게 객관적으로 ‘-다’로 문장을 끝맺어요. 그런 감정을 쌓아두는데 한 번 움직이면 ‘슬카장’ 씁니다.”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옛 여인에 빠지다’(마음산책)의 저자 조혜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3)는 말과 몸짓에서 흥이 넘쳐 났다. 저자가 책에도 언급한 ‘슬카장’은 우리말로 실컷, 한껏이란 뜻. 논문도 ‘훅이 걸려야’ 쓴다는 저자는 논문 쓸 때 억누른 끼를 이번 책에서 맘껏 풀어냈다.

고전소설을 전공한 저자는 19세기 한문 장편소설 ‘삼한습유’로 박사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옛 소설에 빠지다’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 ‘고전서사와 젠더’ 등이 있다. 한국고전여성문학회에서 활동하며 고전문학 속 여성을 꾸준히 연구했다. 저자는 “고전소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여성에게 있다. 읽히는 이야기엔 갈등이 있는데 여성은 고난과 수난을 당해도 호되게 당한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1998년 나온 ‘옛 여인들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썼다. 고전소설에서 ‘정채(精彩) 있게 등장하는 여성’ 15명을 ‘인간 세상을 동경하지 마’ ‘욕망, 도사리거나 배설되거나’ ‘가부장제에서 살아남는 한두 가지 방법’ ‘섹슈얼리티는 나의 무기’ ‘버림받은 자들의 귀환’이란 5개 장에서 3명씩 소개한다. 그는 “전 책이 옛 여인의 정형화된 캐릭터나 흥미성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그들의 삶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오늘날 우리 삶으로 불러냈다”고 했다.

책에서 처음 호명한 여인은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속 백능파다. 백능파는 양소유의 여섯 첩 중 한 명으로 용왕의 막내딸이다. 저자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돋은 백능파를 ‘조선판 인어공주’라 부른다. 백능파는 원하는 배필을 얻으려고 비늘을 벗고 인간이 된다. 그는 “구운몽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백능파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고 했다. “백능파, 마모(삼한습유), 금방울(금방울전) 같은 엉뚱하고 만화적인 캐릭터가 좋아요. 에너지와 야성이 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죠. 인간 세상에 들어오면 힘이 사라지는데 왜 인간을 꿈꿨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옛이야기 속 여인은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 캐릭터와 겹친다. 저자는 ‘삼한습유’ 속 향랑을 보며 하층 여성이 낸 목소리에 주목한다. 영화 ‘하녀’에서 자살로 ‘찍소리’를 낸 전도연과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의사인 주인집 청년에게 속내를 이야기하는 식모 신세경을 통해 억울한 속내를 전달하는 사회적 통로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저자는 아쉽게 이번 책에서 빠진 인물로 ‘임씨삼대록’의 목지란을 뽑았다.

“논문을 쓰면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던 여성이에요.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다시 차오르면 그때는 목지란에 대해 쓸 거예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옛 여인에 빠지다#조혜란#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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