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환경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 서울-평양파 나뉘어 격론벌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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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전도에 도움” “서양 돈에 경배 우려”
延大학술지 병원건립 비화 소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초기 강의 모습.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초기 강의 모습.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평양과 서울 사이에 오가는 비난과 막말, 강 대 강의 대결 구도. 여기까지 들으면 최근 남북 관계를 묘사하는 얘기 같다. 하지만 이는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으로 질병 퇴치와 의술 보급에 큰 기여를 한 세브란스병원(현 연세대 의과대 세브란스병원) 건립 여부를 놓고 외국인 선교사들끼리 벌인 찬반 논쟁 얘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지 ‘동방학지’ 최신호(165집)에 실린 문백란 연구원의 논문 ‘세브란스병원 건립을 둘러싼 선교사들의 갈등과 선교정책 수정’은 이 과정을 다뤘다. 이 병원이 1904년 11월 서울 숭례문 밖에 건립되기까지 선교사들이 ‘서울파’와 ‘평양파’로 나뉘어 벌였던 치열한 논쟁의 양상과 원인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조선 최초의 종합병원 건립 구상은 북장로교 선교회 서울지회 소속 선교사 올리버 에비슨(1860∼1956)에게서 나왔다. 이에 공감한 미국인 거부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가 1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병원 건립 계획은 급물살을 타지만 평양 주재 선교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친다.

평양지회 선교사 윌리엄 헌트는 미국 본토의 북장로교 선교본부에 보낸 서신에서 “의료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에 꼭 필요한 자들이 아니다”며 “그렇게 많은 돈을 병원 사역에 투입하는 것은 죄이며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서울과 평양의 견해 차이는 이들이 직면했던 전도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교세 확장이 빨랐던 평양 선교사들은 “병원 건립은 서양의 부를 과시하는 것으로 자칫 교인들이 복음이 아닌 서구 문명의 사상과 돈의 힘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반면 서울에선 교세 확장이 쉽지 않았다. 서울 선교사들에게 병원 건립은 전도의 새로운 돌파구로 여겨졌다.

미국 본토 선교본부에 경쟁하듯 상대에 대한 비난과 폭로성 서신까지 보내가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양측의 갈등은 선교본부가 기부자 세브란스의 의사를 존중해 1903년 11월 병원 착공식을 가지면서 일단락됐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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