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방망이’ 3D 프린팅 예술의 미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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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 & 아트’전

‘3D 프린팅 & 아트’전은 첨단 기기를 상상과 창작의 도구로 사용한 작업을 보여준다. 조융희 씨는 3D프린터로 만든 왜곡된 비너스 상(왼쪽 위 사진), 박기진 씨는 종이컵을 만들 때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인쇄한 종이더미(왼쪽 아래 사진)를 선보였다. 노세환 씨는 과일을 실제 크기로 출력한 오브제와 사진을 대비해 실제와 복제의 차이를 돌아보게 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3D 프린팅 & 아트’전은 첨단 기기를 상상과 창작의 도구로 사용한 작업을 보여준다. 조융희 씨는 3D프린터로 만든 왜곡된 비너스 상(왼쪽 위 사진), 박기진 씨는 종이컵을 만들 때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인쇄한 종이더미(왼쪽 아래 사진)를 선보였다. 노세환 씨는 과일을 실제 크기로 출력한 오브제와 사진을 대비해 실제와 복제의 차이를 돌아보게 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초창기 컴퓨터는 방 하나만 한 크기였다거나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초상사진을 찍으려면 5분 넘게 꼼짝 말고 있어야 했다는 얘기는 이제 까마득한 과거다. 스마트폰의 진화로 남녀노소가 첨단 기술을 손쉽게 이용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휴대전화처럼 세상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도구로 3차원(3D)프린터가 각광받고 있다.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플라스틱, 액체, 파우더,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가공해 도깨비 방망이처럼 3차원 입체물을 제조하는 장비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3D 프린팅 & 아트: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 도구’전은 3D프린터와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 국내 첫 기획전이다. 3D프린터는 나만의 물건을 찍어내는 1인 생산시대가 열리는 제조업은 물론이고 예술 분야에까지 새 물결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 변화를 엿보기 위해 국내외 작가 21명이 조각 영상 설치 회화 등 50여 점을 내놨다.

서구에 비해 한국의 3D프린터 개발과 보급은 걸음마 단계다. 많은 작가들은 플라스틱 소재를 쓰는 보급형 장비를 상상과 창작의 도구로 삼았다. 짧은 기간에 교육과 시험을 거쳤기에 최종 결과물이 어설프고 거칠다. 그럼에도 첨단 기술이 예술의 활력소가 될지 재앙이 될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다. 강재현 전시팀장은 “3D프린터는 스마트폰이 그렇듯 순식간에 우리 생활 속 깊이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시간과 비용 절감의 효율성을 가진 최첨단 기기가 어떤 미래를 선사할 것인가를 짚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7월 6일까지. 3000∼5000원. 02-736-4371

○ 호기심과 무한 상상의 만남

작가들은 3D프린터를 통해 예술 과학 장난감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인간의 눈으로 감지하기 힘든 속도감을 그대로 표현한 입체작품과 애니메이션(류호열), 달팽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 특수 안경(댄 마이크셀), 반듯반듯한 레고 대신 삐딱하거나 휘어있는 창조적 블록(김창겸) 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작업으로 하기 힘든 작업도 3D프린터는 척척 해낸다. 다차원에 대한 관심을 3D프린터로 실현한 요아힘 바인홀트 씨의 오브제들, 오픈 소스 데이터를 변형한 뒤 3D프린터로 제작한 조각들을 조립하고 대리석 질감으로 채색한 조융희 씨의 비너스 상이 그런 기능을 입증한다. 3D프린터를 이용한 새로운 글자체, 사과 바나나 등 과일을 그대로 본뜬 사진과 입체, 기계 작동의 오류로 생겨난 실패작을 쌓아올린 탑은 최첨단 기술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낸다.

○ 복제와 복원의 기능

3D스캐너와 프린터를 이용해 특정 장소에 대한 복원을 실험한 작가도 있다. 권혜원 씨는 ‘탁본’의 개념을 빌려 동대문 이간수문을 오브제와 영상으로 번역했다. 박기진 씨는 3D프린터로 종이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어 코드를 A4용지에 인쇄한 종이더미(17만5000장)로 기술이 던져놓은 과제를 돌아보게 한다.

훼손된 유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복원하고 명화의 붓질도 재현 가능한 3D스캔과 복제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유사한 작품이 쏟아질 경우 저작권 문제도 복잡해질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도구가 우리를 만들 것이다.’ 캐나다 문명비평가인 마셜 매클루언의 말이다. 화장품부터 무기까지 제조 가능한 도구가 눈부신 미래를 열어줄지, 암울한 시대를 가져올지 인간의 선택에 대한 사유를 이끄는 전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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