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성과를 보지 말고 인간을 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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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안인희 옮김/256쪽·1만3000원·돌베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프리모 레비 지음·이소영 옮김/280쪽·1만3000원·돌베개

아돌프 히틀러 집권 12년 중 최전성기였던 1932∼35년 촬영된 컬러사진 중 한 장.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가 전쟁과 학살이라는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독일을 철저히 이용했으며 심지어 독일의 생사를 자신의 생사에 종속시키려 했기에 패전이 뚜렷해지자 자살 욕구만큼 독일 파괴 욕망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했다. 결국 독일인의 절대적 충성 대상이었던 총통은 애국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아일보DB
아돌프 히틀러 집권 12년 중 최전성기였던 1932∼35년 촬영된 컬러사진 중 한 장.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가 전쟁과 학살이라는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독일을 철저히 이용했으며 심지어 독일의 생사를 자신의 생사에 종속시키려 했기에 패전이 뚜렷해지자 자살 욕구만큼 독일 파괴 욕망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했다. 결국 독일인의 절대적 충성 대상이었던 총통은 애국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아일보DB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1978년 출간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저 ‘저주받은 어릿광대’가 우리 시대의 창조자라니. 게다가 히틀러의 전기라면 이미 국내에도 번역된 요아힘 페스트의 1400여 쪽짜리 ‘히틀러 평전’(1972년 작)이 있지 않은가. 주석이 아니라 사족 아닐까.

하지만 책을 읽으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독일 출신으로 나치 독일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해 언론인으로 활약한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는 페스트와 다른 방식으로 히틀러를 해부한다. 페스트가 횃불 하나 들고 어두컴컴한 ‘악의 심연’을 파고든 탐험가라면 하프너는 그 심장부를 단칼에 도려내는 외과의사다.

“히틀러의 생애를 가르는 단면은 횡단면이 아니라 길게 가르는 종단면이다. 1919년까지는 허약함과 실패, 그리고 1920년 이후로는 힘과 업적이라는 식으로 갈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정치적 삶과 체험에서의 비상한 집중도와 개인적 삶에서의 정도 이상의 빈약함으로 나누어야 한다.”

‘개인적 삶’을 포기하고 ‘정치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흔히 스스로를 포장하는 말이 있다. 멸사봉공이다.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을 보라. 사회적 성공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는 이들로 넘쳐나지 않는가.

진짜 섬뜩한 것은 다음이다. 히틀러는 1933년 권력을 쟁취한 뒤 12년의 정치적 삶 중 절반은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 핵심은 ‘기적’에 가까운 부국강병의 성취다. 1933년 실업자 600만 명을 불과 3년 만에 완전고용으로 돌려놨다. 1933년 달랑 10만의 병력만 있던 독일은 1938년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전차부대와 공군을 보유한 강대국으로 돌아섰고 오스트리아도 합병해 민족통일을 이뤄냈다.

상상해보라. 한국 대통령이 5년 임기 안에 현재의 실업문제를 완전 해소하고 물가안정 속에서 고공성장을 이뤄내고 남북통일까지 이뤄낸다면 그 지지율이 얼마나 치솟을지. 하프너는 1938년 히틀러 지지율이 90%는 됐다고 했다. 현대적 성과주의 잣대로 봤을 때 히틀러만큼 ‘대박’을 터뜨린 지도자가 또 있을까.

문제는 히틀러의 56년 생애에서 ‘개인적 삶’은 텅 비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할 줄 몰랐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했고, 결혼도 안 했으며 자식도 없었다. 진정한 연인도 친구도 없었다. 애인 에바 브라운은 평생 모욕적 취급을 못 견뎌 두 번의 자살을 시도했다. 전 애인이었던 겔리 라우발은 자살했다. 히틀러의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돌격대 대장 에른스트 룀은 히틀러의 배신으로 처형됐다.

그렇다. 히틀러는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의 삶은 젬병이지만 일터와 사회에선 귀재로 불리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는 시대착오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서 온 ‘영혼 없는 터미네이터’에 가깝다.

구체적 삶의 감각이 결핍된 채 오로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이 차가운 기계인간에게 입력된 목표는 딱 두 개였다. 하나는 게르만 민족의 생존공간 무한 확대였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의 멸종이었다. 1942년 러시아전 패배로 첫째 목표가 좌절되자 히틀러는 두 번째 목표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증언문학의 길을 연 레비는 결국 그 트라우마를 못 견디고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이란 점에서 ‘유서’와 같다.

레비는 이 책에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가져온 윤리적 딜레마를 깊숙이 파고든다. 단순히 학살에 그치지 않고 그 인간성을 파괴하기 위해 인간을 동물화한 것에 대한 경악, 자신들의 죄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몰랐다”고 발뺌하는 인간성에 대한 절망이 넘쳐난다. 특히 그 끔찍한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려 당국에 협력한 치욕적 존재라는 죄의식 토로 앞에선 말문이 막힌다. 제목만 보고 세월호 참사와 연결짓는 우를 범해선 결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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