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길 주임신부 “150년전 佛신부가 흘린 피, 한국 신부가 땀으로 갚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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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망교구 보몽 본당 이영길 주임신부

지난달 26일 프랑스 르망 교구 보몽성당에서 열린 ‘한국 순교성인 103위 시성식 3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이영길 신부가 “200여 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한국 가톨릭교회가 복음의 빛을 얻을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하고 있다. 르망=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지난달 26일 프랑스 르망 교구 보몽성당에서 열린 ‘한국 순교성인 103위 시성식 3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이영길 신부가 “200여 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한국 가톨릭교회가 복음의 빛을 얻을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하고 있다. 르망=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설립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나라다. 1831년 조선대목구(조선교구)는 1대 브뤼기에르 주교부터 9대 라리보 주교까지 모두 프랑스 출신 선교사가 교구장을 맡았다. 조선에서 활동한 총 170명의 프랑스 신부 중 25명이 순교했다.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조선 파견 선교사를 전담했던 파리외방전교회는 ‘순교대학’으로 불렸다. 한국의 103위 성인 중에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신부도 10명이 포함됐다.

그로부터 200여 년 후. 한국에 가톨릭을 전파했던 프랑스가 이제는 거꾸로 한국으로부터 성직자를 ‘수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신부 수가 매년 급감해 텅 빈 성당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중서부의 유서 깊은 도시인 르망 교구의 보몽본당에서 주임신부를 맡고 있는 이영길 신부가 대표적인 예다.

주일 미사 후 프랑스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신부.
주일 미사 후 프랑스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신부.
“페르 리, 코망 사 바(잘 지내나요, 이 신부님)?”

돌로 지어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당 앞 광장에서 아기를 안고 지나가던 40대 남성이 이 신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가는 곳마다 아이들을 직접 안아주고, 악수를 나누고, 때로는 사제관 마당에서 한국식 숯불 바비큐 파티까지 열어주는 그에게 현지 신자들은 완전히 매료됐다.

르망 교구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을 지냈던 장 베르뇌(한국명 장경일·1814∼1866) 주교의 고향이어서 신자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베르뇌 주교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배론 성지)에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10년간 사목활동을 펼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한국 순교성인 103위 시성식 이후 엄청나게 성장해온 한국 가톨릭교회에 르망 교구는 꾸준히 성직자 파견을 요청해왔습니다. 올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아시아에서 한국 교회의 존재는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파리 가톨릭대에서 유학한 이 신부는 1989년 당시 안동교구장이었던 두봉 주교의 권유로 프랑스로 오게 됐다. 현재 르망 교구에는 한국 신부가 총 4명으로 늘었다. 이 신부는 주말마다 관내 14개 성당을 돌아다니며 신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집전한다.

“원래 성당마다 주임신부가 있었는데, 지금은 14개 마을이 합쳐져 하나의 본당이 됐어요. 그만큼 빈 성당이 많죠. 르망 교구에서 지난해 새로 서품 받은 사제는 2명뿐이었는데 돌아가신 신부님은 13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사제 수는 1975년 4만2000명에서 2009년 2만4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1905년 철저한 정교분리법이 실시되고 1968년 혁명 당시 ‘나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가 등장한 이후 종교생활이 철저한 개인의 영역으로 취급되면서 관심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반면에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신부가 연평균 3.1%씩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의 교구당 사제 수품자는 매년 10명이 채 안 되는데, 서울대교구에서는 매년 30∼40명의 사제가 배출돼 로마 교황청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정도다. 한국인 신부의 해외 진출도 늘고 있어 한국 교회는 지난해 해외교포 사목에 173명, 해외 선교에 82명을 파견했다.

이 신부는 한국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올 때마다 보몽성당의 프랑스 신자 가정과 결연을 해주고 있다. 그는 “한국 신자들은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반면에 프랑스 신자들은 은근하면서 깊은 매력이 있다”며 “세계인들이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이라는 가톨릭 정신에 따라 서로 나누다 보면 새로운 종교문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최근 세월호 사고 이후 수많은 프랑스 신자들이 관심을 표하며 위로의 기도를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그동안 물질적 성장만 강조해오면서 가족의 소중함, 남을 배려하는 마음, 올바른 것에 대한 판단 등 내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며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상처를 치유하고 의연하게 일어서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 위기를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르망=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가톨릭#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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