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파리넬리, 그냥 가수 아닌 훌륭한 공직자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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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브로스키(사진)는 18세기의 전설적인 가수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 스페인 왕실의 초청을 받고 건너간 그를 전 유럽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높은 평판은 단지 ‘노래를 잘한다’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러 기록을 보면 그는 계약을 성실하게 지켰고 최선을 다해 공연에 임했습니다. 행동에서도 우아하고 고귀한 풍모가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는 훌륭한 공직자이기도 했습니다. 명예를 소중히 여겼던 그는 작은 선물이라도 들어오면 무조건 돌려보냈습니다. 이름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다고 합니다. 한 재단사가 그에게서 코트를 주문받고는 옷값을 받지 않겠다며 대신 노래를 한 곡 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노래를 들려준 뒤 “내 청도 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노래를 들려준 ‘대가’로 원래 주문액의 두 배가 넘는 코트 값을 내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스페인 펠리페 5세 왕에 이어 페르난도 6세를 섬기면서 그에 대한 신뢰와 평판은 높아져만 갔습니다. 왕이 자리를 비울 때는 고문관 자격으로 중요 인사를 접견했으며, 유명한 아란후에스 궁전의 보수를 감독했고, 마침내 타호 강의 배수 공사를 성공적으로 지휘해 냄새가 고약했던 강가를 아름답고 말끔한 곳으로 되돌렸습니다.

떠나는 자리도 깔끔했습니다. 평생 연금이 보장됐지만 선대의 이탈리아 취향과 거리를 두려 한 카를로스 3세가 등극하자 그는 새 왕에게 예를 올린 뒤 주저 없이 이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파트리크 바르비에르가 쓴 ‘카스트라토의 역사’(이혜원 옮김·일조각)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로스키는 ‘남성’이 제거된 거세가수, 즉 카스트라토였고, 그는 오늘날 ‘파리넬리’라는 예명으로 널리 기억되는 그 사람입니다.

3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는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립니다. 오늘날 카스트라토는 사라졌고 ‘완전한 남성’으로서 가성(假聲)으로 높은 소리를 내는 카운터테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자루스키는 파리넬리의 스승 포르포라가 제자를 위해 쓴 아리아와, 헨델이 파리넬리의 라이벌 카레스티니를 위해 쓴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카를로 브로스키#가수#공직자#카스트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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