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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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언 신부 책 ‘탕자의 귀향’에서
[잊지 못할 말 한마디]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
‘20세기의 마지막 영성가’로 일컬어지는 사제 헨리 나우언의 책 ‘탕자의 귀향’에서 읽은 말이다. 이 말은 나우언이 직접 한 말은 아니다. 캐나다에 있는 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슈 데이브레이크에서 그와 10여 년간 함께 생활했던 수 모스텔러 수녀가 정리한 말이다.

‘당신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 관계가 힘이 들 때는 사랑을 선택하라. 서로 하나 되기 위해서 상처 입고 쓰라린 감정 사이를 거닐라. 마음으로부터 서로 용서하라.’

모스텔러 수녀는 나우언의 정신적 유산을 이렇게 단 몇 마디로 요약했다. 나우언이 우리에게 준 영적 위로의 세계를 요약한 것이므로 그가 한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요즘 이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이 말이 내 인생의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이 말은 내 과거를 성찰하게 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남은 인생을 매순간 어떠한 사랑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준다.

우리는 누구나 ‘너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산다. 부모형제와 나와의 관계, 배우자와 자식과 나와의 관계, 이웃과 친구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산다. 나아가 자연과 인간인 나와의 관계, 신과 인간인 나와의 관계 속에서 오늘을 산다.

나는 단 하루도 이 관계망을 벗어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 관계가 항상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미움을 선택했기 때문에 관계는 더 악화되고 내 삶은 고통스러웠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했더라면 오늘의 내 인생이 참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인생이라도 관계가 힘이 들 때 반드시 사랑을 선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결심해본다. 그러면 지금껏 내 인생에서 미처 만나지 못한 평화가 웃는 얼굴로 발소리도 가볍게 조용히 나를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우언은 ‘탕자의 귀향’을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보고 썼다. 그는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가서 이틀 동안이나 이 그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감상하면서 깊은 사랑의 관계를 성찰했다. 사랑의 여러 가지 본질 중에서 용서의 본질을 영성적 태도로 성찰한 결과가 바로 그 책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그렸다. 알려진 대로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멀리 다른 지방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쓰다가 흉년이 들어 돼지치기로 살며 굶주리게 되자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용서를 청하는 이야기다. 렘브란트는 이 이야기를 죽기 한 해 전에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나우언은 이 그림에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사랑과 용서의 관계를, 신과 인간의 관계를 영성적 측면에서 깊게 묵상한다. 그는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모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우언처럼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원화가 보고 싶어 얼마 전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 ‘돌아온 탕자’ 그림을 내 가슴속에 늘 걸어놓고 산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에 휩싸여 잠 못 이룰 때 그 그림을 꺼내 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할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용서만이 사랑이자 희망이라고 속삭이는 ‘돌아온 탕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해주는 용서의 진정한 자세는 그림속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자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오늘도 이 말씀을 생각하며 저녁을 맞는다. 먼저 용서를 해야만 미움을 선택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미움을 먼저 선택하면 사랑을 선택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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