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말라… 인생이란 원래 슬픈 것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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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규시인, 시집 2권 잇달아 출간

이준규 시인은 시집 ‘네모’의 속지에 ‘지혜에게’라고 적어 넣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인 아내의 이름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준규 시인은 시집 ‘네모’의 속지에 ‘지혜에게’라고 적어 넣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인 아내의 이름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수화기 너머 출판사 편집자가 말했다. “시인은 핸드폰이 없어요. 집 전화번호를 알려드릴게요. e메일은 자주 확인하시던데, 그쪽으로 연락해 보세요.”

이준규 시인(44)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e메일을 보낸 지 약 6시간 만에 답장이 돌아왔다. “네, 인터뷰 가능합니다.” 그는 최근 시집 ‘네모’(문학과지성사)와 ‘반복’(문학동네)을 잇달아 펴낸 참이었다. ‘반복’은 2011년 시집 ‘삼척’(문예중앙)을 낸 이후에 쓴 산문시로 채웠고, ‘네모’는 2009년 무렵부터 최근까지 쓴 길지 않은 시만 따로 묶었다. 두 시집에 적힌 ‘시인의 말’은 간결하다. ‘슬픔만을 남기고 싶었다’(네모), ‘반복한다’(반복)

14일 만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으로 사는 건 어려워도 시를 쓸 때는 두려움이 없다.” ‘시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그는 시를 멈추지 않는다. 그가 시다. 그는 시 이상이 아니다. 그는 시일 뿐이다.’(‘반복’에 실린 ‘그는’ 중)

“시인은 시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시를 써가면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 시는 곧 이준규의 생각이다. 내 생각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시 세계도 갈 길을 알 수 없는 그런 흥미로움이 있다.”

그의 시는 한 줄 한 줄 되새기기보다는 전체를 느껴야 한다.

‘공터가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공터의 끝에 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뒤로 테니스장이 있었다. 테니스장 옆에는 밭이 있었다.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그곳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조금 떨어져 도로가 있고 도로 위에는 육교가 있었다. 공터의 다른 끝에는 아파트가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공터의 가운데에 트램펄린이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네모’에 실린 ‘트램펄린’ 전문)

문장 사이의 빈 공간에 솟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상승하고 내려앉는 시인의 시선이 숨어 있다. 어느 저녁, 해가 지는 공터의 적막한 쓸쓸함이 진동하듯 찾아드는 것이다.

“인생을 들여다볼수록 슬픔만 남는 것 같다. 부질없다는 게 아니라 슬픔으로 삶을 이해하는 거다. 나의 시는 구조를 분석하기보다 시의 파편들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받아들이면 된다. 사물과 철학적으로 마주하는 시인의 자세는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시인을 ‘이상한 성자(聖者)’라고 말한다.

“시인은 특별한 직업들 가운데 가장 초라한 일을 한다. 시인은 고통스럽고 그 처지에 처절한 면이 있다. 구도자나 사상가와 비슷하면서도 시인이 다른 것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면 좋지만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어떻게든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준규 시인#네모#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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