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農半禪의 산사생활… “농사가 염불보다 훨씬 힘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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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작은 암자…’ 책 펴낸 충북 청원 마야사 현진 스님

산 아래 작은 사찰의 작은 스님은 산 아래 예쁜 사찰의 글쟁이 스님이다. 현진 스님은 “절의 핵심은 법당과 식당, 해우소(解憂所·화장실)로 침묵 속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삼묵(三默) 공간”이라며 “법문을 즐겁게 듣고, 맛있게 먹고,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도록 세 공간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청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산 아래 작은 사찰의 작은 스님은 산 아래 예쁜 사찰의 글쟁이 스님이다. 현진 스님은 “절의 핵심은 법당과 식당, 해우소(解憂所·화장실)로 침묵 속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삼묵(三默) 공간”이라며 “법문을 즐겁게 듣고, 맛있게 먹고,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도록 세 공간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청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산 아래 작은 암자에 사는 작은 스님을 찾아나섰다. 전날 책 한 권을 받았다.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담앤북스·사진).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현진 스님(48)의 책이다. 내친김에 전화로 “내일 공양 됩니까” 했더니, 어서 오란다. 12일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는 충청도에 들어서자 호우(豪雨)가 됐다. 스님은 ‘삭발하는 날’ ‘잼 있는 스님이야기’ 등으로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3년 전 충북 청원군에 마야사를 세워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인상 깊은 책 구절에 스님과의 대화를 추임새로 넣었다. 》

# 여름 내내 바람 피웠던 놈들이네. 예부터 부채를 일러 ‘지죽상혼 기자청풍(紙竹相婚 其子淸風)’이라 했다. 즉,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서 그 자식이 맑은 바람을 낸다는 말이다.


―부채가 몇 개나 되나.

“예? 아, 부처라고 들었어. 뭔 소리인가 했지. 하하. 합죽선 셋 하고 한 열 개쯤. 여름에 손님들에게 50개쯤 선물로 줬어. 바람 잘 피우라고, 잘 피웠는지 모르지만.”

# 밭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속상하다. 어제 절 식구들이 모여 풀에게 ‘항복 선언’을 했다.

―책에 반농반선의 삶이라는데….

“아니다. 반반농(半半農) 반선이다. 농사가 염불보다 훨씬 힘들다.”

―3년 농사 점수를 준다면….

“30점이나 될까. 절집 식구 셋이서 500평 밭 풀 뽑기 힘들어 그냥 뒀더니 개망초가 지천인데 너무 예쁘더라. 그런데 이웃에서 제발 풀 좀 베 달라고 하더라. 풀씨가 이웃 밭으로 날아온다고 해서 허둥지둥 풀을 벴다.”

# 한 번은 선어록을 들추다 치절(痴絶)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 절 이름 삼을까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치절은 무슨 뜻….

“어리석음을 끊는다는 건데, 치절암은 어째 발음이 영….”

―마야사는 좀 평범하다.

“늙어 암자를 다시 지으면 수졸암(守拙庵)으로 하려고. 나서지 않고 졸렬함을 지킨다는 의미로.”

# 어머니는 평생 고집하던 쪽머리의 비녀를 빼고 긴 머리를 자르고 뽀글뽀글 파마를 하시고 아이처럼 웃으셨다.

―왜 파마를….

“마흔 넘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항상 나이 든 엄마였다. 그 기억 때문인지 4년 전 여행 가면서 파마 하자고 권했다.”

―곁에서 모시고 싶다는 말도 했다.

“몇 해 전 2박 3일 절에서 모신 적이 있다. 근데 대구 형님댁 개밥 줘야 한다고 가시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개 안 키우더라. 하하. 노인에게 진짜 효도는 편하고 익숙한 것이다.”

―속가를 멀리하라는 말도 있다.

“젊을 때는 그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누구든 부처인데 하물며 어머니 눈에 눈물 내면 되나.”

# 호빵을 맛나게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산문(山門) 속으로 들어갔다.

―출가 때 얘긴데, 지금도 호빵 좋아하나.

“겨울 되면 생각난다. 그때 내게 호빵은 세속의 상징이었다. 스님들 열의 열은 밀가루로 만든 것을 좋아한다.”

# 지난 동지 때 신도들과 팥죽을 나누면서 새해부터 3소 운동을 실천하자고 했다. 이른바 미소, 검소, 간소다.

―3소 운동은 왜….

“스님은 ‘서비스업’이다. 가끔 ‘그렇게 행동하려면 절에 오지 말라’고 하는 스님도 있다. 이 말은 서비스업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신도 없는 절, 교회, 성당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청원=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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