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자하 하디드 “독창적 잔디 지붕… 건물 자체가 지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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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설계 자하 하디드 21일 개관 앞두고 방한
26일까지 식탁 등 40여점 소품 전시회

‘건축계의 여제’로 불리는 자하 하디드 씨가 11일 오후 ‘자하 하디드 삼백육십도’ 전시장을 찾았다. 커다란 자궁 같은 전시장을 닮은 유연한 곡선의 인테리어와 패션소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Z 의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건축계의 여제’로 불리는 자하 하디드 씨가 11일 오후 ‘자하 하디드 삼백육십도’ 전시장을 찾았다. 커다란 자궁 같은 전시장을 닮은 유연한 곡선의 인테리어와 패션소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품은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Z 의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너무 크다고요? 무엇을 기준으로 크다고 하는지 되묻고 싶네요.”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 씨(64)가 11일 오후 자신이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 4층 잔디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21일 DDP 개관을 기념해 이날부터 열리는 전시회 ‘자하 하디드 삼백육십도’ 홍보를 위해 방한했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건축가의 기자회견장은 내외신 기자들로 꽉 찼고 예정된 30분 동안 날 선 질문과 허스키하고 빠른 어조의 당당한 답변이 오갔다. 그의 건축 파트너인 패트릭 슈마허 자하하디드 건축사무소 공동대표(53)가 옆에서 “DDP를 둘러싼 논란은 디자인이 너무나 독창적이기 때문”이라고 거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DDP가 독창적인가.

“건축물과 지형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DDP는 건축물 자체가 지형이 됐다. 지붕이 잔디로 덮여 있는 것만 보더라도 새로운 지형을 창조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부처럼 발에 꼭 맞게 설계한 플라스틱 신발.
피부처럼 발에 꼭 맞게 설계한 플라스틱 신발.
―스케일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스케일은 건축가에게 주어진 조건이다. DDP를 설계하는 건 집 한 채, 사무실 하나 짓는 것과 다르다. 지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곡선을 많이 썼는데 박스 형태로 똑같은 기능을 하는 건물을 설계했다면 훨씬 커보였을 것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도 일본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크게 짓는다는 지적이 있다.(그가 설계한 주경기장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머드 급이다)

“여러분도 크다고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 부엌이나 침실은 줄여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장은 적정 수용 인원이란 기준이 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설계를 맡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하다. 중요한 건 어버니즘(도시화)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이다.”

―어버니즘이 잘 구현된 도시란….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와 특성을 고려해 이를 건축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섬유유리를 이용해 설계한 소파.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섬유유리를 이용해 설계한 소파.
―예전에 여성 건축가로서 ‘끊임없이 전투를 치르는 기분’이라고 했다.

“건축가라는 직업 자체가 너무나 힘들다. 다양한 사람과 끝없이 협상에 협상을 거듭해야 한다. 이런 전투가 여성에게 더 힘든 건 사실이다. 여성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동료, 스승, 건축주, 정치인을 설득해야 했다.”

―이번 전시회의 부제가 ‘스푼에서 도시까지’이다. 작은 소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건축의 차이는….

“반지를 디자인하든 건물을 디자인하든 기본은 비슷할 수 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과정은 건축이 훨씬 복잡하다. 다층적 공간을 설계해야 하니까.”

이 밖에 ‘DDP는 원래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린데 이런 역사적 요소를 설계에 어떻게 반영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슈마허 대표는 대신 나서서 “공간 자체가 경기장의 느낌을 준다. 추상적이나마 경기장 터라는 분위기를 살려보려 했다”고 답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조명.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조명.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기자회견이 끝나자 하디드 씨는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전시장인 상상놀이터 로비로 향했다. 이리저리 휘어지는 비정형 공간에 곡선미가 두드러지는 숟가락, 식탁, 킬힐, 보석류, 소파 등 토털 디자이너 하디드 씨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살려면 이런 물건 들여놓고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 듯했다. 전시회는 26일까지 계속된다. 다음 달 4일부터는 건축물 모형을 중심으로 2차 전시가 DDP 알림터 국제회의장에서 이어진다.

12일 오후 3시 DDP 알림 1관에서는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의 사회로 하디드 씨와 슈마허 공동대표가 참여하는 자하 하디드 포럼이 열린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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