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작가’ 샐린저, 베일을 벗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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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샐린저 평전’ 번역 출간… 생전 극단적 신비주의에 몸 숨겨
사랑과 파경 등 사생활 낱낱이

‘호밀밭의 파수꾼’(1951년)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사진)는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신비주의 전략을 취한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그는 1965년 뉴요커에 단편 ‘1924년, 햅워스 16일’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뒤 수십 년간 미국 뉴햄프셔 주 코니시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침묵의 세월을 보냈다. 샐린저는 생전 랜덤하우스가 자신의 전기를 펴내자 소송을 걸어 전기에 인용된 개인적 편지, 신상 정보, 자신이 언급된 모든 인터뷰 기록을 삭제시켰다. 그러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전기를 발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샐린저가 2010년 1월 별세한 뒤 같은 해 5월 ‘샐린저 평전’이 나왔다. 최근 민음사에서 번역 출간한 이 책은 2004년부터 샐린저 웹사이트를 운영해온 케니스 슬라웬스키가 집필했다. 작가 사후에 최초로 나온 전기로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 우나와의 사랑과 파경,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 출판사 및 언론과의 마찰 등 샐린저를 둘러싼 베일을 걷어낸다.

샐린저는 ‘호밀밭…’을 쓰기 전인 1941년 모든 작가가 선망하던 뉴요커에 ‘로이스 타겟의 길었던 데뷔’를 포함해 8편의 작품을 보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우나와의 연애도 순탄치 않았다. 우나의 취향에 맞추느라 감당하기 힘든 고급식당에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1943년 우나는 찰리 채플린의 네 번째 아내가 된다. 1950년 뉴요커에 ‘호밀밭…’ 원고를 보냈다가 퇴짜는 물론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은 그의 삶을 지배한 우울, 불안과 맞닿아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방첩부대원으로 참전했던 샐린저는 독일 점령지 내 집단수용소를 돌며 끔찍한 살육의 흔적을 목격했다. 전쟁 후 샐린저는 글쓰기를 통해 전쟁에서 얻은 질문, 죽음과 신, 관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답을 구했다. 저자는 ‘호밀밭…’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를 읽을 땐 샐린저의 참전 경험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샐린저가 전성기 때 은둔을 선택한 이유는 글쓰기와 명상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했다. 대중의 시선으로 글쓰기마저 염증을 느끼게 되자 아예 숨어 살면서 열심히 소설을 쓰되 자신의 사후에 순차적으로 발표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 있었지만 거기 속하지 않은 작가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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