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돌아온 ‘석가삼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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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강탈당한 18세기 조선불화, 美 허미티지 박물관 공들여 설득
‘기부와 기증’ 방식으로 되찾아와

미국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다 국내로 환수된 조선불화 ‘석가삼존도’. 석가 좌우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서 있고, 그 뒤로 용녀와 아미타여래 다보여래 용왕(왼쪽부터)이 보인다. 독특하게 석가 정면에 아난존자(왼쪽)와 가섭존자가 앉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미국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다 국내로 환수된 조선불화 ‘석가삼존도’. 석가 좌우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서 있고, 그 뒤로 용녀와 아미타여래 다보여래 용왕(왼쪽부터)이 보인다. 독특하게 석가 정면에 아난존자(왼쪽)와 가섭존자가 앉아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야음을 틈타 강탈당했을 불화는 장황(裝潢·표구)조차 남질 않았다. 서둘러 배접(褙接)으로 끝자락을 다듬었으나 화기(畵記)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입술을 앙다문 석가 존안도 덧칠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이리 돌아온 게 어딘가.

일제강점기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조선불화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7일 “미국 버지니아 주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던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를 환수했다”고 밝혔다.

석가모니 좌우로 보현과 문수 양 보살이 시립한 불화는 가로세로 318.5×315cm 크기로 큰 사찰의 대웅전 후불탱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 활약한 화승 의균(義均)의 화풍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기존에 이런 대형 작품이 없진 않았으나 고려·조선불화에서 처음 발견된 독특한 도상(圖像)이 눈길을 끈다. 석가 정면에 그 십대제자(十大弟子)의 대표 격인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타(阿難陀)가 앉아 있다. 흔히 가섭·아난존자라 불리는 둘은 불화에 즐겨 등장하나 이리 중앙에 배석한 경우는 없다. 게다가 미소를 머금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조선 풍속화의 잔향이 짙다. 안 이사장은 “중국 일본불화에서도 이런 해학적 형태를 본 적이 없다”며 “보물 이상 지정문화재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석가삼존도에 화기가 없는 까닭에는 이 불화가 겪은 모진 세월이 배어 있다. 1910년대 누군가 사찰에서 훔치며 출처를 감추려 뜯어버린 것. 명확한 주인을 모르는 불화는 손쉽게 일본으로 밀반출됐고, 이를 사들인 고미술거래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가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리저리 떠돌던 불화는 1944년 결국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렸다. 전시장소가 협소한 박물관은 오랫동안 불화를 둘둘 말아 수장고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

해외 박물관 소장 문화재를 ‘기부와 기증’ 방식으로 되찾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5월 버지니아박물관협회가 공개한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서 불화를 발견한 재단은 매매를 꺼리는 박물관을 공들여 설득했다. 수장고에 묵히지 말고 국내에서 제대로 전시 대접하자고 권했다. 게다가 후원업체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박물관에 기부금을 내고, 박물관은 별도로 한국에 기증하는 모양새로 명분도 살려줬다. 최영창 활용홍보실장은 “앞으로 운영자금이 취약한 해외 박물관들과 적극 협의해 더 많은 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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