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변하는 게 아니라 꽃피우는 거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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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홍성남 신부
[잊지못할 말 한 마디]소설가 백영옥

《 때로 말은 그냥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로, 또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벼락처럼 다가온 인생의 전환점으로. 각계 인사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들었던, 그러나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말의 여운을 들려줍니다. 》

오랫동안 명동에 가면 명동성당에 앉아 있는 버릇이 있었다. 옷가게와 카페, 상점들로 복잡한 골목을 빗겨나 서 있는 성당 안은 늘 고요해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뭔가 기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도의 절반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다른 사람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홍성남 신부님에 대해 알게 된 건, 그의 사제관 안에 커다란 ‘샌드백’이 놓여 있었단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바로 샌드백의 정체가 도무지 화가 안 풀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패대기치기 위한 ‘분노해소용’이란 것이었다. 몇 번 용서해야 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사랑과 화해를 권해야 할 신부가 어째서 방 안에 샌드백 걸고 두들겨 팬단 말인가.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에서 술주정뱅이 남편과 이혼해야 할지, 견뎌야 할지 묻는 신도에게 ‘헤어지세요!’라고 말하거나, 시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던 신도에게 ‘시어머니 옷이라도 안방 안에 펼쳐놓고 방망이로 패주라’는 그의 해결책에 나는 한참 의아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자신의 역할은 죄 없는 성도 만들기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란 말에 공감했다. 이런 신부님도 계시는구나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전화를 건 스토커에게 노래까지 불러주던 천사 같은 보좌신부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히 대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45년이라고 했는데, 그 과정에 ‘상담심리’를 공부한 시간들이 놓여 있었다.

인간은 정말 변하는 존재일까. 명동성당에서 심리 사역 중이었던 신부님과 얘길하다가 문득 내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신부님이 내게 해주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성격은 안 바뀌죠. 장미가 백합이 되진 않아요. 근데 많은 사람이 자기는 할미꽃인데 장미가 되고 싶어 해요. 많은 종교는 그걸 회개라고 생각하고요. 가톨릭의 성인, 멘토? 그들과 같아지면 안 돼요. 인간은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피워야죠. 민들레와 제비꽃이 왜 백합이 돼야 합니까. 민들레고 제비꽃이라도 그것이 시들고, 활짝 피고는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닭이 독수리가 되는 게 아니고, 새장 속을 나와 하늘 높이 나는 게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 얘길 들었을 때, 뭔가 가슴을 툭 치는 것 같았다. 상태가 바뀔 뿐, 본질이 바뀌지 않는단 얘기를 듣는 순간 ‘변화’에 대한 내 고정관념 하나가 깨진 셈이다. 말하자면 시든 상태가 아니라 피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가장 나답게 잘사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딸이나 며느리로, 엄마로, 혹은 직장의 과장으로, 팀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얼굴로 사는 일.

그제야 김훈의 이 말이 돌연 이해되었다.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 때문에 망가진 사람이란 말, 뭘 하고 사는지 도대체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라는 그 얘기 말이다.

소설가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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