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선 아쟁 패밀리, 현에 담은 한의 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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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문가 후손 박종선 명인… 열네살부터 유랑극단서 아쟁연주
딸들이 가시밭길 뒤따라 걸을까봐 “국악 뭣하러 혀… 밥도 못먹는디”
피는 못속여 둘째딸과 장남까지 아쟁 하겠다고 나서자 고집 꺾어
피리 전공한 둘째 사위와 함께 19일 온가족 한무대 무료연주회

흰눈이 펑펑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아쟁 가족. 왼쪽부터 장남 박기영, 박종선 명인, 둘째 딸 박희정. 국극단 반주를 했던 아버지처럼 딸은 국립창극단에서 연주를 하고, 아들은 창작곡을 중심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흰눈이 펑펑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아쟁 가족. 왼쪽부터 장남 박기영, 박종선 명인, 둘째 딸 박희정. 국극단 반주를 했던 아버지처럼 딸은 국립창극단에서 연주를 하고, 아들은 창작곡을 중심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새로운 가지를 뻗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국악 해봐야 뭣 헐 것이여! 밥도 못 먹고 사는디. 좋게 시집이나 가거라.”

아쟁이라면 팔도강산에서 첫손에 꼽히는 박종선(72)은 큰딸 희연(45)에게 누누이 얘기했다.

남도땅 광주에서 태어난 박종선은 판소리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큰아버지 박동실 명창(1897∼1968)은 김소희 임소향을 길러냈고, 외할아버지는 임방울의 스승인 공창식 명창이다. 외삼촌 공기남 공기준도 명성이 자자한 소리꾼이었다. 박동실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큰딸 수길은 남도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창이었고, 둘째 딸 희숙은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부른 인기가수 김정호를 낳았다.

세 살 때 양친을 잃고 큰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종선은 가슴을 에는 아쟁소리가 미치게 좋았다. 외로운 소년에게 아쟁은 버팀목이고 애인이었다. 그 악기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박동실이 6·25전쟁 때 월북을 한 뒤 일가는 국악을 멀리하게 됐지만, 박종선은 음악을 버릴 수 없어 14세 때 큰집을 나왔다. 소년은 화랑여성창극단에 입단해 20대 중반까지 햇님, 송죽, 진경여성국극단 등을 옮겨 다니며 연주단원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태평소 장구 가야금 북 등 악기를 두루 익히며 민속악을 섭렵했다.

“10대 소년이 어른들과 나란히 앉아서 반주를 항께 ‘어린놈이 참 잘헌다’ 허고 인기가 엄청 많았어요. 여관 밥 먹고 연주하고 잠자고 하는 것이 그때 생활의 전부제. 돈 주면 쓰고, 안 주면 말고. 힘들어도 참 좋았는디….”

그는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가 196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와 아쟁 산조를 창안한 한일섭(1929∼1974)의 문하에 들어갔다. 한일섭 앞에서 그동안 짠 아쟁 산조를 조심스레 선보였다. 한일섭은 “잘 탄다. 좋기는 한데, 두서가 없다”면서 가르침을 주었다. 박종선은 한일섭의 10분 정도 길이 산조에 자신의 가락을 보태 현재의 30분 내외의 ‘박종선류 아쟁산조’를 완성했다.

음악평론가 현경채는 “박종선류 아쟁산조는 슬픈 음색과 더불어 보다 짙은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다른 산조보다 처음 배울 때는 쉬운 듯하나 하면 할수록 깊은 내면의 표출과 단순해 보이는 가락 속에 담겨 있는 성음에 마음을 담아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악기를) 만지기만 하면 다 되아 부렀던” 젊은 시절, 그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김소희 등등 유명한 선생들 다 있는 데서 방구석에 앉아있으면 아주 답답해부러요. ‘아이고, 나보고 아쟁 좀 타보라고 허지, 어째 말이 없는고.’ 그러다가 누가 ‘우리 종선이 아쟁산조나 한번 들어봅시다’ 하면 혼자 속으로 ‘이제 쓰겄다’ 하면서 기가 맥히게 타불지. ‘얼씨구, 좋다 좋아’ 그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어서, 허허. 그런데 음악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점점 무대가 무서워집디다.”

박종선의 4남매 중 둘이 아버지의 예술 혼을 잇고 있다. 장남 기영(42)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아쟁 부수석이고, 둘째 딸 희정(40)은 국립창극단 기악부 아쟁 연주단원이다. 막내딸 희진(38)은 해금을 전공했다. 둘째 딸의 남편 박경현(46)은 국립국악관현악단 피리 수석.

가시밭길을 뒤따라 걸을까봐 큰딸은 애초부터 안 된다고 못을 박았지만, 우리 음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고 여건이 좋아지면서 마음을 바꿨다. 큰딸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됐지만 장남은 작곡을, 둘째 딸은 판소리를 익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아쟁을 선택했다. 이들에게 아버지는 더없이 엄격한 스승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제자들보다 저희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 하셨어요. 왜 그렇게 못 받아 들이냐고, 정말 많이 혼났어요. 희정이랑 둘이 한여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운 적도 있으니까요.”(기영)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식들한테 ‘너 참 잘헌다’ 그러면 공부가 안 되는 거예요. 자만이 넘어서 못 쓰지. 잘했으면 혼자 마음으로만 알고 있지, 대놓고 말은 안 해요.”

딸 희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음, 그래, 고생했다’ ‘거기 그렇게 하면 돼’ 이렇게 말씀하시면 아, 칭찬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아쟁 가족의 한 무대는 19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만날 수 있다. 명인의 꿈같은 지난 세월을 주제로 박종선류 아쟁산조, 아쟁과 거문고 병주, 아쟁과 태평소 이중주를 연주한다. 무료. 02-3011-2178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국악#박종선#희연#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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