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적 과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막이 열리고 10분 정도 지날 때까지 ‘잘못 들어와 앉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던져지는 이야기를 한 입 두 입 넘길수록 뒷맛이 부담 없이 야릇하다. 1시간 40분 뒤 입안에 남은 것은 뜻밖의 소박한 맛집을 찾아낸 청량감이었다.
시작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젊은 영화감독 지망생이 학교 선배로 보이는 제작자를 붙들고 투덜거린다. “할리우드 판박이는 누구나 찍어요. 시대의 현실을 담아내 세상을 직시하게 만들고 싶어요.” 후우. 또 관객에게 투정부리는 이야기인가.
그때 중산모에 턱시도를 걸치고 긴 우산을 든 에릭 사티가 살짝 찰리 채플린을 흉내 내며 등장한다. 2013년 서울 시공간 한끝이 문득 1917년 프랑스 파리 거리로 구부러져 들어간다.
음악극 ‘에릭 사티’는 그 공상의 접점에 주저앉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넉살 좋게 빚어내 보여 준다. 작곡가 사티가 장 콕토, 파블로 피카소와 합심해 발레극 ‘파라드’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100년 뒤 서울에서 건너온 주인공이 개입한다. 어처구니없고 부자연스러운 상상인데, 볼수록 어째 밉지가 않다.
버팀목은 음악이다. 신경미 음악감독은 ‘짐노페디 1번’ ‘나는 당신을 원해(Je Te Veux)’ 등 사티의 곡을 겉멋 없이 깔끔하게 편곡해 배경에 펼쳤다. 귀에 전해지는 건 소박한 팬의 심정이다. 이야기와 음악 모두, 사티와 그의 음악에 대한 애끓는 연모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행여 어설픈 공상으로 그의 자취에 누를 끼칠까 내내 조심한다.
“우리 사티 오빠는 ‘파라드’를 작곡할 때 아마 이랬을 거야.” 팬클럽 소녀들의 달뜬 재잘거림을 엿듣는 기분이다.
후반부 ‘파라드’ 공연 재현 장면은 사티가 실존했던 1917년 파리의 한 극장을 이데아로 상정하고 우직하게 모방한다. 기자처럼 ‘짐노페디’만 겨우 아는 문외한이 아닌 사티 음악에 조예가 깊은 관객이라면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입을 빌려 ‘연극적 약속’을 상기시켜 방어막을 친 건 그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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