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흙, 오늘의 현대미술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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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대상에 쿠쿨리 벨라드

11월 17일까지 열리는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국제지명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페루의 여성 작가 쿠쿨리 벨라드의 ‘수호자 산티아고’. 토착 인디언이 예수의 가면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성 야고보 조각상이다. 한국도자재단 제공
11월 17일까지 열리는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국제지명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페루의 여성 작가 쿠쿨리 벨라드의 ‘수호자 산티아고’. 토착 인디언이 예수의 가면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성 야고보 조각상이다. 한국도자재단 제공
페루의 인디오처럼 생긴 성 야고보가 예수의 가면을 들고 있다. 그 옆 성모 마리아도 가무잡잡한 얼굴이다. 페루 작가 쿠쿨리 벨라드가 흙으로 구워 낸 조각상들이다. 과거 식민통치자들이 고유 전통과 서구 문명의 강제적 결합을 강요했다면 작가는 두 문명의 공존을 세련된 조형언어로 재해석한 점이 신선하다. 이는 한국도자재단 주최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지명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01년부터 시작해 7회를 맞는 도자비엔날레에서는 이인진 홍익대 도예유리과 교수가 전시감독을 맡아 변화를 시도했다. 누구나 응모하는 공모전에서 실력 있는 40대 이상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명 공모 방식으로 본 전시를 전환한 것. 국제위원 11명이 작가들을 지명하고 최종 선발된 작가들이 ‘커뮤니티-나, 너, 우리 다 함께’란 주제에 맞게 신작을 만들었다. 그 결과 18개국 27명의 51점이 경기 이천시 세라피아에 모였다. 전시는 ‘공동체’란 주제에 대한 집중도와 도자 회화 영상 설치 등 장르 융합 면에서 알찬 결실을 보여 준다. 40대 미만 작가들이 참여한 특별전 ‘역설의 미학’은 지명 공모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국제 공모로 뽑힌 신진들을 선보였다.

이 비엔날레는 도자 분야가 마이너 장르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는 행사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흙의 미학과 첨단의 현대미술이 소통하면서 더 큰 시너지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본 전시가 열리는 이천을 비롯해 여주도자세상, 곤지암도자공원에서 펼쳐진다. 11월 17일까지. 031-631-6501

“도자 분야,더이상 마이너 장르 아니다”

중견들의 무게감을 보여 주는 국제지명공모전은 장르 간 경계가 무너진 현대미술의 흐름을 뚜렷이 드러낸다. 공통분모는 ‘흙’이지만 활용 방식은 다양하다. 영국 작가 클레어 투미는 일반인의 참여로 ‘유산: 미래의 선물’을 완성했다. 인터넷에 ‘생을 마칠 때 남기고 싶은 글을 올려 달라’는 작가의 주문에 세계 곳곳에서 답을 보내왔다. 작가는 순백의 본차이나 사발 100개에 18K 금으로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기, 스스로에게 정직하기, 그리고 행복하기’ 등 100개의 문구를 새겨 놓았다. 일본의 원전사고 지역에서 채취한 흙으로 만든 오브제와 영상을 결합한 ‘자연물과 인공물’, 컴퓨터에 중독된 현대인을 회화와 도자로 풍자한 ‘컴퓨터와 게자리’, 도자와 그래피티를 결합한 ‘근육질 구조물’도 도자 작업의 다양성을 보여 준다.

섬세한 레이스 문양으로 구운 700개의 도자 타일로 세계 지도를 완성한 이자벨 페란드, 유대교 의식에 쓰는 끈으로 인체를 연결한 바다 아톰, 떨어진 동백꽃으로 자살하는 젊은이를 표현한 한애규 등은 개인이 모여 우리를 이루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소비자본주의 비판하는 역발상 참신

비엔날레의 특별전 ‘역설의 미학’에 나온 유의정 씨의 설치작품.
비엔날레의 특별전 ‘역설의 미학’에 나온 유의정 씨의 설치작품.
‘역설의 미학’전에선 8개국 신진 작가 20명이 소비자본주의 사회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쓸모없는 식기를 배열한 식탁, 씨앗을 표면에 붙여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만든 도자기,바다 생물을 닮은 주전자 등 재치 있는 상상과 역발상이 눈길을 끈다.

특별전에선 한국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스타벅스 나이키 등 유명 상표와 로고를 청자로 만들어 팝아트 설치작품을 선보인 유의정, 초벌 자기에 국보 문양을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주세균, 비단제비나방의 날개 이미지를 손으로 빚은 도자 조각들로 표현한 손진희, 두꺼비 달팽이 등 도자로 만든 생명체를 도자기 알에 채운 뒤 높은 곳에서 굴러 내려오게 만든 맹욱재 등. 현대미술의 본류로 진입하는 도자의 적응력을 증명하는 작업들이다.

이천=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역설의 미학#클레어 투미#유산: 미래의 선물#도자비엔날레#쿠쿨리 벨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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