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교수 “시조는 시가 될 수 있어도 시는 시조가 될 수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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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홈피에 7001수째 시조 올린 김준 서울여대 명예교수

16일 서울 구로동 시조문학 사무실에서 만난 김준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쓴 시조 관련 책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1960년 등단 후 시조라는 한 우물만 파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6일 서울 구로동 시조문학 사무실에서 만난 김준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쓴 시조 관련 책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1960년 등단 후 시조라는 한 우물만 파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엊그제 내린 비로 추위가 온다하고/설악산 단풍들은 눈 속에 졌다 한다/내 귀한 가을이래도 별 수 없이 잃고 있다’

계간 시조문학 발행인이자 시조시인 김준 서울여대 명예교수(75)는 16일 시조문학 홈페이지 ‘김준 문학서재’ 코너에 7001번째 시조 ‘엊그제 내린 비로’를 올렸다. 2003년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에서 정년퇴직한 뒤 10년간 올린 작품이 어느새 7000수가 넘어섰다. 이달 말 새 시조집을 출간하는 그를 서울 구로동 시조문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시조와 함께 살았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아버지 뜻에 따라 이리공고 전자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글과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복잡한 수학공식과 위험한 전기실습은 힘에 부쳤다. 학교를 관둘까 하던 차에 시조시인이자 국어교사인 구름재 박병순 선생을 만났다. 김 명예교수는 “선생님이 황진이 시조를 읊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시조는 내 신앙이 됐다”고 했다. 다시 가람 이병기 선생에게 시조를 배운 뒤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196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대학 졸업 뒤 수도공고, 중앙고 국어교사, 서울여대 교수로 일하며 꾸준히 시조를 썼다. 활발한 저작 활동을 했던 학자도 퇴임 이후엔 쉬는데, 오히려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더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 “30여 년 전 등산 중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해 불편하지만 매일 오후 9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진 시조를 씁니다. 남들은 시조가 형식이 있어 고루하다고 하는데, 그 형식 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매만지는 재미에 피로한 줄 모릅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 몇 년 전 일본 오사카 여행 때 그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위와 함께 한 선술집에 갔다. 술집에 있던 비슷한 또래의 일본인 손님들은 그가 시조시인이란 사실을 알고 한 수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즉석에서 한 수를 노래했다. ‘접어 둔 헌 우산을 서둘러 챙겨 들고/봄비를 맞으면서 네 생각에 젖고 있다/펼쳐 든 우산 속으로 그리움이 고인다’. 그의 즉흥시를 들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시인 하이쿠보다 낫다며 박수를 쳤다.

김 명예교수는 ‘파격시조’를 주장하며 기본적인 형식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요즘 세태가 아쉽다고 했다. 그는 “시조 형식을 바꾸는 것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시조는 시가 될 수 있지만 시는 시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원로 방송인 송해처럼 허허 웃으며 시조를 읊던 그가 이 순간만큼은 표정이 비장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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