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칼럼]PPL(간접광고),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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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부각되게… 너무 노골적이진 않게”

5월 방송된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간접광고로 살짝 삽입된 농협 축산브랜드 ‘목우촌’의 한글 간판. SBS TV 화면 캡처
5월 방송된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간접광고로 살짝 삽입된 농협 축산브랜드 ‘목우촌’의 한글 간판. SBS TV 화면 캡처
“야, ‘PPL’(간접광고·Product Placement) 어디 있어?”

“그게 저 화장품 광고인데 지금 프로그램하고는 잘….”

“넣어, 넣어. 무조건 넣어.”

지난달 방영된 KBS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에서 드라마 제작자 대표와 감독으로 분한 개그맨들이 주고받는 대사다. 이어지는 극중극에서 형사들이 취조 중인 용의자에게 ‘결정적 증거’라며 마스크팩을 들이댄다. 범행 당시 얼굴을 가릴 때 쓴 제품이라는 황당한 해석에 이어 “콜라겐 성분이 들어있어 노화방지에 좋다는 그 마스크팩”이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관객들이 이 대목에서 폭소를 터뜨리는 이유는 이 개그가 ‘맞아, 맞아’라는 공감대와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 카타르시스를 함께 주기 때문이다. PPL이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사극 드라마에서도 ‘목우촌’ 푸줏간과 ‘놀부보쌈’ 고깃집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갑자기 “고창은 복분자주가 유명하지”라든가 “문경은 오미자야”라는 대사를 읊으며 21세기 지방자치단체를 홍보해준다. ‘신의’ ‘닥터 진’ ‘옥탑방 왕세자’처럼 시간여행 퓨전사극이 쏟아진 이유를 “일반 사극으로는 PPL을 할 수가 없어서”라고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시청자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드라마의 작품성을 떨어뜨리고 몰입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PPL을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사용하는 제품이 좋아 보이면 얼른 상품 검색을 해서 구매하기 바쁘다. 그러다 자신들이 PPL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해당 제품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감정을 품게 된다. ‘이 드라마 주인공들은 왜 A제품만 쓰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나오면 PPL 효과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노골적으로 상품 홍보를 하려고 압력을 넣는 대기업 악덕 홍보 담당자나 부당한 요구와 작가로서의 자존심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드라마 제작진의 모습은 잊어버리시길. 반대로 현실에서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PPL을 하나라도 더 할까’라는 궁리에 빠져 있고, 오히려 기업 쪽에서 ‘우리 PPL이 극의 흐름을 해치는 건 아닐까’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화 권력은 이수만이나 이외수가 아니라 PPL 아닐까. PPL은 이제 연극, 뮤지컬, 웹툰으로도 진출했다. 그런데 영화 ‘스파이더맨’의 대사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간다.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간접광고#장옥정#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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