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Harmony/이 사람이 사는법]‘궤짝’ 사장 신종덕 씨와 아내 황승현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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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궤짝 몇 채 더 던져놓고 싶어요 그곳서 지친 사람들이 위안 얻게…”

‘궤짝’의 사장 신종덕 씨(오른쪽)와 아내 황승현 씨가 카페 건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신 씨가 탄 1989년 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는 고장나 버려진 것을 고철값만 주고 구입해 엔진부터 핸들까지 손수 고쳐 되살린 그의 애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궤짝’의 사장 신종덕 씨(오른쪽)와 아내 황승현 씨가 카페 건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신 씨가 탄 1989년 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는 고장나 버려진 것을 고철값만 주고 구입해 엔진부터 핸들까지 손수 고쳐 되살린 그의 애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취재 오신다고요? 아무 때나 오세요. 근데 여기 뭐 보여드릴 게 있나 모르겠네.”

그와의 인연은 조금 생뚱맞게 맺어졌다. “음성에 재밌는 카페가 있다”는 주위 사람들과 인터넷의 입소문에 물어물어 카페 사장과 가진 통화. 취재 날짜를 잡자는 제안을 하자 그는 “화요일도 좋고, 수요일도 좋고… 편할 때 오세요”라고 했다. 스마트폰 다이어리에 분(分) 단위로 스케줄을 짜는 데 익숙한 기자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운’ 답이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나들목(IC)을 빠져나오니 내비게이션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법한 농로(農路)를 안내했다. 화면에 찍힌 주소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 좁은 농로를 따라 10여 분을 가니 복숭아 과수원 한가운데 신기한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궤짝’이라는 카페 이름이 왜 붙었는지 저절로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궤짝 모형이 비스듬하게 땅에 박힌 모양새가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진다. 작업 중이던 사장은 부랴부랴 손을 씻고 기자에게 악수를 건넸다. 도시의 샐러리맨에게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하면서도 거친 일꾼의 손맛이 손 너머로 전해졌다.

‘궤짝’ 사장 신종덕 씨(41)와 아내 황승현 씨(40).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부부는 “하루하루가 기적 같고 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시골의 카페 생활이 왜 그렇게 기적 같고 감사할까. 더위를 식혀준 비가 카페와 복숭아 밭을 촉촉이 적시던 12일 오전, 신 씨 부부를 만나 그들만의 ‘궤짝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시골 소년, 미대를 가다

신 씨의 고향은 매일같이 땅을 일구는 이곳, 감곡이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은 3형제 중 막내인 그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원이라는 건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큰 도시로 유학을 떠났지만 신 씨는 중학교까지 감곡에서 마친 뒤 고등학교도 음성으로 진학했다.

“솔직히 공부는 별로였어요. 그래도 미술 시간은 늘 신났어요. 그림만 그렸다 하면 상을 주더라고요.”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 씨는 학교에서 난생처음으로 석고상이라는 걸 봤다. “이걸 잘 그리면 대학에도 갈 수 있다”는 미술 선생님의 말을 듣고 독학으로 그림 공부에 전념했다. 독하게 공부한 끝에 신 씨는 실기장학생으로 충북대 미술교육과에 갔다.

1992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 씨는 충북 청주에서 제일 크다는 미술학원에 강사로 취직했다. 농사짓는 부모님에게는 차마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수입은 짭짤했다. 학교 끝나고 하루 3시간씩 가르치면 한 달에 60만 원 넘게 벌 수 있었다. 청주 미술학원장들 사이에서 ‘신 선생’ 하면 다들 알아줬다. 고생하며 독학으로 깨우친 노하우가 학생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예술가의 끼가 넘치는 피끓는 20대 신종덕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다 해 봐야 했다. 군 제대 뒤 연기에 도전해 보겠다고 서울로 갔다. 지상파 방송사 공채 탤런트 시험장을 기웃거리며 TV드라마 단역으로도 종종 출연했다. 시골 출신이라고 괜히 주눅이 들 때면 더욱 작심하고 자신을 쏟아냈다.

30대에 고향으로 돌아오다

미술도 연기도 몸 바쳐 열심히 했지만 마음 한쪽은 늘 헛헛했다. ‘이게 아닌데….’ 대학 시절 학교와 학원, 작업실을 쳇바퀴 돌 듯 오가는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게 미술 교사가 돼 평생을 학교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겠다고 연기에 도전했지만, 신 씨의 절실함을 채워 주진 못했다.

“몸도 마음도 늘 불편했어요. 남이 만들어 주는 인생에 나를 끼워 맞추기는 싫었어요. 내 삶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서른 살이 되던 해, 신 씨는 고향 감곡으로 돌아왔다. 고향은 청주로 서울로 돌면서 피폐해진 그의 영혼을 보듬어 줬다. 아내도 그의 귀향을 말리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성당에서 만난 아내 황 씨 역시 도시 생활의 화려함이 내키지 않았다.

고향에서도 밥벌이는 필요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면사무소 인근에 입시미술학원을 차렸다. 교육지원청에 학원 등록을 신청하니 직원이 “입시미술학원이 뭐냐”며 되물었다. 면소재지 시골에 미술학원, 그것도 미대에 갈 학생을 가르치는 입시학원을 연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미쳤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입소문이 났는지 학원을 차린 지 한 달 만에 학생 4명이 그림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쳤고 아이들은 경희대, 숙명여대 등 서울 유수의 대학교 미대에 진학했다.

주변에서는 ‘이 정도 실력이면 대도시에 나가 크게 학원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신 씨는 학원을 접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평생 품어 왔던 꿈을 실현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땅을 도화지 삼아 멋진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 그 꿈을 펼치기 위해 신 씨는 삽을 들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신종덕 씨가 카페 ‘궤짝’ 옆에 마련한 미술가 농원. 신 씨는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신종덕 씨가 카페 ‘궤짝’ 옆에 마련한 미술가 농원. 신 씨는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제작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인생을 담는 공간 ‘궤짝’

신 씨에게 ‘궤짝’이란 삶을 담는 공간이다. “지금이야 종이 상자가 흔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복숭아를 수확하면 커다란 나무 궤짝에 차곡차곡 담았어요. 땀의 결실인 복숭아를 담는 궤짝이야 말로 인생을 담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땅을 고르는 것부터 기둥을 세우는 일까지 하나하나를 모두 손수 했다. 처음부터 커피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건물 모양이 제법 나오기 시작하면서 외지 사람들이 종종 들르곤 했다. 대접할 게 없어 봉지커피를 타 주니, 찻값이라며 만 원을 쥐여줬다.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제법 들르기 시작했다. 아예 독학으로 커피 공부를 했다. 카페 ‘궤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궤짝’이 완성된 뒤로는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겼다. 위생검사를 나온 면사무소 공무원이 건물을 보고는 “군에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뽑는다는데 한번 지원해 보라”고 권했다. 변변한 조감도 하나 없이 사진 몇 장을 찍어 접수시켰다. 음성군은 지난해 12월 신 씨의 건물을 ‘올해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뽑았다. 군청 추천으로 농촌진흥청에서 선정하는 ‘농촌교육농장’으로도 지정됐다. 신 씨는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작업장을 꾸며 마을 사람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만 골라 20여 년을 달려 오면서 신 씨 부부는 ‘채우려고 욕심내지 말자’는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진리를 깨달았다. 때로는 시골에 살아 외롭고, 때로는 돈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했다. 돈이 없을 때보다 머리에서 샘솟는 아이디어가 의지대로 표현되지 않을 때가 더 힘들었다는 신 씨. 그래서 이들 부부는 백지나 마찬가지였던 산속에 신 씨의 예술 감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작품을 일군 게 뿌듯하다.

신 씨의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궤짝’ 몇 채를 더 지어 산속에 툭툭 던져놓고 싶단다. “말 그대로 무릉도원에 파묻힌 궤짝이에요. 신선하지 않아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궤짝에서 위안을 얻고 간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신 씨의 궤짝은 나눌수록 커지는 마법의 상자다.

음성=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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