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답사 아내는 스케치 “바늘과 실의 동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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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남편과 화가 아내… 전경수 서울대 교수-이경희 씨 부부가 사는 법

“아이고, 내가 이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을 다 모아가지고…, 하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오른쪽)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민예품을 자택 정원에 늘어놓았다. 전 교수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흰 수염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켰다. 멜빵바지가 잘 어울리는 화가 아내 이경희 씨는 소녀처럼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이고, 내가 이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을 다 모아가지고…, 하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오른쪽)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민예품을 자택 정원에 늘어놓았다. 전 교수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흰 수염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켰다. 멜빵바지가 잘 어울리는 화가 아내 이경희 씨는 소녀처럼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인류학자 남편과 화가 아내는 결혼 40주년을 맞은 지금도 찰싹 붙어 다닌다.

인류의 원형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남편이 답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그 지역의 주민과 자연을 그린다. 그렇게 남미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세계 구석구석을 함께 다녔다.

실크로드에서는 찜통 같은 버스를 타고 사막을 건넜고, 대만의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함께 지내기도 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64)와 화가 이경희 씨(64·예명 누미) 부부 이야기다. 》    
    

4일 찾은 서울 강남구 세곡동 자택은 과연 인류학자와 화가가 함께 사는 집이었다. 거실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전통 민예품과 이 씨가 그린 이국적인 수채화로 가득해 작은 인류학 박물관 같았다. 동갑내기 부부는 각각 서울대 문리대와 미대 67학번으로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학생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파푸아를 답사한 결과를 모아 인류학 에세이 겸 연구서 ‘파푸아에서 배운다’(채륜서·사진)를 최근 펴냈다. 제자 5명이 본문을 쓰고, 이 씨가 현지에서 그린 수채화와 드로잉, 크로키를 삽화로 실었다. 전 교수는 연구 책임자로 책을 엮었다.

이들은 2009년 12월과 2010년 8월 1개월씩 파푸아에서 지냈다. 호주 북쪽에 자리한 섬 파푸아는 312개 부족과 276개 언어,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하는 인류학 연구의 보고(寶庫). 전 교수가 파푸아를 답사지로 택한 것은 일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靖一)의 연구 족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즈미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 해군의 점령지였던 파푸아 비악 섬에서 인류학 자료를 수집했고 그 상당수가 서울대박물관에 있다. 전 교수팀은 비악 섬 북쪽 해안의 소르 마을에 머물며 마을의 구조와 역사, 문화, 종교, 풍습을 관찰했다.

이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마을학교 교실에서 연 작은 사진전을 꼽았다. “처음 파푸아에 갔을 때 제가 카메라를 드니 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두 번째 방문 때 사진 200여 장을 인화해 전시하고, 주민들에게 각자 찍힌 사진을 나눠줬죠.”

그 마을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었다. 주민들은 죽은 가족의 유골을 집안에 모셔두고, 마당에 무덤을 둔다. 주민 대부분이 겉으론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집안에선 조상신 ‘?르와르’를 섬긴다는 것.

전 교수는 파푸아의 ‘?르와르’ 신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싱크리티즘(syncretism·혼합주의)’으로 설명해왔지만, ?르와르는 누에고치와 같은 현상으로 새롭게 설명해야 합니다. 누에(원주민의 전통문화)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고치(개신교)라는 보호막으로 꽁꽁 둘러싼 거죠.”

파푸아에서 전 교수가 주민들을 만나 대화하는 동안 이 씨는 수채화 70여 점, 드로잉과 크로키 수백 점을 그렸다. TV도 스마트폰도 없는 오지에선 오직 천혜의 자연과 사람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전 교수는 “1년의 절반은 답사지에서 보내는데 동료 인류학자들을 둘러봐도 우리 부부처럼 함께 다니는 커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씨는 “내가 역마살이 있는지 돌아다니길 좋아하는데 인류학자 남편을 만났으니 천생연분인가 보다”라고 했다. 부부의 역마살을 빼닮았는지 둘째아들과 며느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2년 일정의 세계일주를 떠났다. 전 교수 부부는 또 올여름 필리핀으로 답사를 떠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전경수#이경희#파푸아에서 배운다#인도네시아 파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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