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조르바… 낭만적 자유 외친 원작보다 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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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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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번안극 ‘라오지앙후 최막심’ ★★★☆

‘라오지앙후 최막심’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이주해온 연해주의 한 마을을 보여주며 자유를 열망하게 만드는 시대적 상황과 삶의 질곡, 억압을 이야기한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라오지앙후 최막심’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이주해온 연해주의 한 마을을 보여주며 자유를 열망하게 만드는 시대적 상황과 삶의 질곡, 억압을 이야기한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라오지앙후 최막심’(배삼식 작·양정웅 연출)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1941년 연해주 지역의 떠돌이 조선인 최막심의 이야기로 번안한 작품이다. 최막심의 별명 ‘라오지앙후(老江湖)’는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을 뜻하는 중국 속어, 최막심은 한국인 성씨인 최와 흔한 러시아 이름 막심을 섞어놓은 것이다. 민족과 조국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극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에 위치한 상상의 마을 ‘앵화촌’이다. 원작의 배경은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서 참혹한 분쟁을 겪고 있던 1800년대 말 크레타 섬이었다. 작가는 터키와 전쟁 중인 크레타의 분위기와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모습을 연결지었다. 앵화촌 마을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러 나간 아들과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남기 위해 아편농사를 짓는다. 이곳에 광산사업을 하러 온 지식인 김이문은 최막심을 만난 뒤 책을 집어던지고 마을 사람들의 애환 어린 진짜 삶과 마주한다.

시대적 배경이 다른 탓인지 낭만적인 자유를 다뤘던 원작보다 극은 분위기가 처지고 어두워졌다. 광기 충만한 조르바의 경쾌한 춤사위 대신 최막심은 아코디언을 처연히 연주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이 담긴 대사를 뱉는다. ‘민족’ ‘나라’ ‘조국’이 들어간 대사가 유난히 많은데 최막심은 이런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을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과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미쳐간다. 죽은 남편이 일본인이었던 로사는 마녀사냥을 당한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최막심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조국과 민족은 개수작”이라고 외치는 최막심의 광기와 야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고민했던 조르바만큼 강렬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인 음악감독 하찌가 연출한 배경음악은 극이 끝난 후에도 뇌리에 남는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우쿨렐레, 기타, 아코디언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코스모스 탄식’ ‘연해주 천리길’을 비롯한 1930, 40년대 근대가요를 부르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침울한 분위기를 그나마 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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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그리스인 조르바#라오지앙후 최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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