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30t짜리 한일월드컵 기념종의 비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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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억/전민식 지음/440쪽·1만3500원/은행나무

두 번째 장편소설 ‘불의 기억’을 펴낸 소설가 전민식. 작가는 거대한 종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치열한 재기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은행나무 제공
두 번째 장편소설 ‘불의 기억’을 펴낸 소설가 전민식. 작가는 거대한 종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치열한 재기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은행나무 제공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한 대형 종(鐘)이 만들어졌던가?’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소설은 한반도가 온통 축구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20t짜리 성덕대왕신종을 넘어서는 30t짜리 월드컵 기념종을 만들었던 두 장인의 성공과 좌절, 절망을 그린다.

물론 당시 그런 종도, 그런 종을 만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소설은 평생의 역작으로 남을 종 제작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마치 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서울 외곽의 시골마을인 금형리. ‘혐오시설’로 분류된 주물 업체들이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이 개최되던 즈음 서울에서 밀려나 하나둘 모여든 곳. 월드컵을 앞두고 철로 된 기념품이 각광을 받으며 금형리도 활기를 띤다.

무엇보다 사람의 관심을 끈 것은 주철장인 규철이 만드는 거대한 기념종.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1년여 동안의 작업 끝에 첫 타종이 거행된다. 지축을 울리는 우렁찬 종소리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지만 규철은 절망한다. 종 어딘가에 금이 가서 깨진 소리가 미묘하게 들린 것. 축구장 한편에 종을 걸다 지지물이 깨져 종은 결국 훼손된다. 실패한 규철에게 모든 책임이 쏠리고 그는 광인으로 변한다.

초반부를 차지하는 기념종 제작과정은 이야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사실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실패 후 종 제작에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집념이다. 예술혼 운운은 지루해질 수 있다. 참고 읽을 진득한 독자도 적다.

작가는 여기에 여러 미스터리를 가미하는 영민함을 선보인다. 규철의 아내가 살해되고 규철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살해현장을 목격한 규철의 딸은 두 남성의 흔적을 봤다. ‘범인이 누구인가’란 의문은 작품 끝까지 이어지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 다른 미스터리는 거대 종 제작의 비밀. 다시 30t짜리 종 제작에 돌입한 규철, 그리고 그의 친구인 한위는 아기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성덕대왕신종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결국 거대한 종이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P)’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장인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작품은 종 제작과 살인사건이란 두 가지 비밀이 맞물리며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살인사건에 대한 결말은 다소 엉뚱하지만 종 제작에 얽힌 장인들의 고뇌와 절망을 잘 끄집어내 책장을 덮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팍에 박히는 듯하다.

지난해 마흔일곱의 나이에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9전 10기로 등단한 작가는 수상작이자 첫 장편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4만 부를 넘겼다. 오랜 습작 덕분인지 중견 작가 같은 안정적 필력이 돋보인다. 한 가지 길에 몰두한 뚝심 있는 규철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얼굴 같기도 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불의 기억#전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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