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시벨리우스 음악언어는 두근거리는 겨울이다… 눈처럼 햇살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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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국민음악의 아버지’ 시벨리우스.
‘핀란드 국민음악의 아버지’ 시벨리우스.
겨울. 북유럽에 가본 적 없는 사람도 적막한 숲에 한없이 내리는 눈을, 호수 너머로 잠길 듯 아스라이 빛나는 햇살을 떠올리게 됩니다.

9년 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곳곳에서 ‘SISU’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행사 간판에도, 대형 화물차에도, 신문 헤드라인에도 있었습니다. ‘대체 시수가 뭘까….’ 호텔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핀란드에서 사업할 때의 세 가지 키워드는 사우나, 시벨리우스(1865∼1957), 시수’라는 말이 여러 군데 인용돼 있었습니다. 사우나와 시벨리우스라면 친숙하지만 시수라니….

여러 건의 추가 검색을 통해 ‘시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찾아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시수는 영어로 굳은 의지, 결단, 인내, 불합리에 직면해 발휘하는 이성을 의미하지만 다른 언어로 적절히 번역되기는 힘들다. 핀란드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당시 머리에 반짝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공연 매니저인 헬레네 티포넨 씨에게 물어봤습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을 다들 좋아하죠?” “그럼요.” “그 아름다운 피날레가 ‘시수’와 관련 있나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인터넷에는 그런 얘기가 안 나오던데.” “너무 당연하니까 구태여 말을 안 하는 것 아닐까요?”

<음원제공 낙소스>
<음원제공 낙소스>
그 뒤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1902년)은 내게 항상 ‘시수’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억압 아래 놓여 있던 시기에 쓰인 이 곡의 4악장은 용틀임하는 현의 움직임과 강렬한 금관의 음색이 어울려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향시 ‘핀란디아’처럼 핀란드 민족의 독립의지를 고취하려는 작품이란 해석이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시벨리우스 자신은 이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러시아 당국의 탄압을 두려워했기 때문일까요.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시벨리우스는 마음속에 ‘시수’나 그와 유사한 추상적인 인간 의지의 힘을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저항심도 작용했지만, 한정된 시대 상황에 이 걸작을 가둬놓고 싶지는 않았으리라…’라고.

올겨울에도 곳곳에서 시벨리우스의 선율이 울립니다. 9일에는 ‘한 손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캐나다의 에이드리언 아난타완이 수원시향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습니다. 22일에는 제주청소년교향악단이 교향곡 2번을 연주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음악 언어로 표현한 불굴의 의지가 청소년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졌기를 바랍니다.

오늘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그의 교향곡 6번(1923년)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이 곡을 발표하고 20년 뒤 한 편지에서 “이 작품은 내게 첫눈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습니다. 첫눈이 아닐지라도 이 곡을 들으면서 바라보는 눈발은 항상 마음을 두근거리게 합니다.(올해는 이미 눈이 너무 많이 왔나요….)

유윤종 gustav@donga.com
#시벨리우스#교향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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