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이스라엘 국가가 ‘몰다우 강’ 닮은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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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는 몰다우(블타바) 강. 스메타나는 이 강의 유유한 흐름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시 ‘몰다우 강’을 작곡했다. 동아일보DB
체코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는 몰다우(블타바) 강. 스메타나는 이 강의 유유한 흐름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시 ‘몰다우 강’을 작곡했다. 동아일보DB
유윤종 선임기자가 꾸미는 ‘쫄깃 클래식感’ 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며칠 내 공연장에서 감상하게 될 명곡의 탄생에 얽힌 뒷이야기,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만나보고 싶은 명선율,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남긴 흥미로운 일화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①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 ②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 강’ 주선율. ③17세기 전 유럽에서 유행한 노래 ‘푸지 푸지(도망쳐 도망쳐)’. ④모차르트 ‘작은 별(어머니께 말씀해 드리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중 제8변주. 네 선율 모두(‘몰다우 강’은 못갖춘마디인 첫음 제외) 단조의 주음인 계이름 ‘라’에서 시작해 6도 위까지 한 음씩 올라가다 다시 주음으로 내려온다.
①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 ②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 강’ 주선율. ③17세기 전 유럽에서 유행한 노래 ‘푸지 푸지(도망쳐 도망쳐)’. ④모차르트 ‘작은 별(어머니께 말씀해 드리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중 제8변주. 네 선율 모두(‘몰다우 강’은 못갖춘마디인 첫음 제외) 단조의 주음인 계이름 ‘라’에서 시작해 6도 위까지 한 음씩 올라가다 다시 주음으로 내려온다.
5,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턱시도나 짙은 정장을 입고 오라’는 ‘드레스 코드’ 주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주최 측의 의도는 연주가 시작되자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해외 악단의 내한 연주로는 드물게 우리 ‘애국가’와 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히브리어로 희망)를 연주했거든요. 이들이 콘서트를 일종의 엄숙한 ‘의식’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드러낸 셈입니다.

더욱 흥미를 자아낸 것은 하티크바의 선율이었습니다. 비장하면서도 다른 나라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이 선율을 여러 청중이 낯설게 느꼈습니다. 몇몇 청중은 “가요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 ‘바블껌’이라는 듀오가 부른 ‘비야 비야’라는 가요와도 닮았습니다.

사실 이 노래들과 비슷한 선율은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 테너 주세페 첸치는 ‘푸지 푸지(도망쳐 도망쳐)’라는 노래를 작곡해 부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이 노래는 유럽을 평정했고 스코틀랜드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여러 나라가 이와 비슷한 ‘민요’를 갖게 됐습니다.

동아일보 편집국 뉴스룸은 국장·부장단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동요 ‘반짝 반짝 작은 별’ 선율로 이를 알립니다. 어느 날 무심코 이 선율을 듣다가 ‘어, 이것도 ‘푸지 푸지’와 비슷하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반짝 반짝 작은 별’을 주제로 한 모차르트의 ‘어머니께 말씀해 드리죠’ 변주곡 여덟 번째 변주는 이 주제를 단조로 옮긴 것입니다. 생각난 김에 CD를 찾아 들어 보았습니다. 기억한 대로 이 변주 역시 이스라엘 국가와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귀띔해 드릴까요. KBS교향악단은 다음 달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프라하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인 레오스 스바로프스키 지휘로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의 대표작인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전 6곡을 연주합니다. 여섯 곡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곡이 두 번째 곡 ‘몰다우 강’이죠. 이 곡에서 강물이 굽이치는 듯한 주선율을 기억하십니까. 이 선율 역시 ‘푸지 푸지’에서 온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대표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바 있습니다. 우월한 유전자(gene)가 많은 자손을 남기듯, 우월한 의미(meaning)의 낱낱의 단위인 ‘밈’은 복제되고 전파되며 오랜 기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입니다.

이를 적용해 본다면 17세기 출현한 ‘푸지 푸지’의 밈은 오늘날까지 복제되고 전파되며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덧붙여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 선율은 이후 장조로 모습을 바꾸어 ‘작은 별’ 노래가 되면서 영미권 어린이들이 알파벳을 배울 때마다 익혀야 하는, 한층 더 강력한 밈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벗 한 분이 ‘소리개가 빙빙 높이 떴구나(Fuchs, du hast die Gans gestohlen)·여우야, 거위를 훔쳤지’라는 독일 민요도 비슷한 선율 아니냐고 하시네요. 앗!

※인터넷에서 ‘Fuggi Fuggi’ ‘Israeli national anthem’ ‘Moldau’ ‘Mozart Variations’ 등으로 검색하면 관련된 선율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세요. 저작권이 확보된 음원으로 감상하시고, 마음에 드는 곡은 꼭 음원이나 음반을 구입하시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주빈 메타#하티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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