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판’같은 신문지… 볼펜과 연필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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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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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 우직한 노동… 새 물성 품은 예술로 탄생, 대구미술관 ‘최병소’전

작가 최병소 씨는 신문과 신문용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무수한 선을 그어 검게 빛나는 표피를 만들어낸다. 그의 고된 노동으로 탄생한 작품에는 군데군데 찢겨나간 상처 자국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뭉클한 울림을 준다. 대구미술관 제공
작가 최병소 씨는 신문과 신문용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무수한 선을 그어 검게 빛나는 표피를 만들어낸다. 그의 고된 노동으로 탄생한 작품에는 군데군데 찢겨나간 상처 자국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뭉클한 울림을 준다. 대구미술관 제공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5개 전시실에 선보인 작품들이 제각기 벽, 바닥, 공간을 무대 삼아 충만한 매력과 개성을 뿜어낸다. 10m가 넘는 두루마리 신문용지 양면을 검정 볼펜과 연필로 빈틈없이 채운 작품은 천장에 매달려 공간을 더 깊이 드러낸다. 옆방에는 한 면만 까맣게 칠한 신문용지를 뒤집어 하얀 등판을 노출한 작업과 신문을 작두로 잘라 흩뿌린 설치작품이 자리 잡았다. 런던 올림픽 기간에 발행된 영국의 더타임스를 잉크 없는 볼펜으로 그어 흠집을 낸 뒤 긴 벽면에 부착한 설치작품은 작가의 창작 역시 축제이자 놀이임을 일깨운다.》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관장 김선희)에서 2월 17일까지 열리는 ‘최병소’전의 풍경이다. 신문지 그리고 모나미153볼펜과 4B연필을 캔버스와 화구 대신 사용하는 최병소 씨(70)의 원숙한 내공과 확장된 작업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서 활동해 온 작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자신만의 ‘지우기와 긋기’ 드로잉으로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전위성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일기 쓰듯 하루 10시간씩 책상에서 볼펜으로 신문을 지우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혹독한 노동을 거쳐 종이는 점점 닳고 얇아져 검게 빛나는 금속성 물질처럼 보인다. 작가의 우직한 노동을 통해 새로운 물성을 가진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 새로운 지평을 열다

새로운 벽면 설치작품 앞에 선 최병소 씨.
새로운 벽면 설치작품 앞에 선 최병소 씨.
이 전시는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칠순 나이에도 안주하지 않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추구한 거장의 투지를 날것 그대로 접하는 자리란 점에서 주목된다. 신문 규격(80×54cm)에 묶여 있던 그의 작업은 신문용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규모의 제약에서 벗어났다. 이번에 시도한 대형 설치작품과 성냥상자 껌종이 등 이전의 작은 작품이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준다.

새로운 시도가 꽤 만족스러운 듯 작가의 표정이 밝았다. “돈 없던 시절에 꼭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려야 한다는 데 회의가 생겨서 손닿는 데 있는 신문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방법론적으로 신문을 지우는 형태지만 실은 나를 지우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젊은 시절 쓸데없는 이기심과 욕심이 많았다. 한데 그때와 지금 내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이런 작업을 오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이나마 수행이 된 것 같다.”

볼펜과 연필에 찢겨 상처투성이가 된 신문은 1970년대 시대 상황에 대한 사적인 검열이거나 무언의 저항으로도,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지우는 ‘표현의 부정(否定)’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작가는 “신문이 볼펜과 연필을 만나 다른 물질로 성불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무한 반복의 행위와 작가의 삶이 오롯이 스며든 작품은 미니멀한 개념작업이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 몸으로 작업하다

작업실 없이 집에서 일하던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일상을 예술로 품었다. 그리고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하는 작업과 달리 몸으로 작업했다. “내 작업은 부지런하면 못한다. 느리고 게을러야 한다. 나는 엉덩이 힘으로 일하는 작가다. 몸으로 하는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 걷기가 그렇듯이.”

무수한 반복에 지루함을 느꼈던 그는 10년 정도 중단했다 1990년대 작업을 재개한다. “밀도란 것을 알게 됐다. 민화는 화려하고 재밌지만 밀도가 부족한 반면 ‘세한도’의 경우 지루한 듯 밀도가 있지 않나. 이제는 간편하고 단순한 작업이 내 체질이 됐다.”

까맣고 너덜너덜해진 신문작업은 대중적 인기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치열하고 올곧은 작가적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굶어죽을 만큼 아니면 됐다. 미술사에 금자탑을 세우면 뭐하는데? 그냥 최병소란 작가가 변방에 있었다는 정도면 됐지.” 그에게 작업은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는 진지한 성찰의 여정이었다.

대구=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최병소#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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