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3]9인의 신예작가, 다시 출발선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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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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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그만두고 쓴 시나리오, 10년 넘게 도전해온 詩, 마감 직전 제출한 영화평론
중견 탤런트의 무르익은 시조, 스물네살 풋풋한 열정의 희곡
소설처럼 걸려온 축하전화

“새해 첫날 등단 소식을 알립니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힘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나리오 이동은, 단편소설 송지현, 시조 조은덕, 시 이병국, 동화 이수안, 희곡 최준호, 영화평론 이채원, 문학평론 임세화, 중편소설 고송석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새해 첫날 등단 소식을 알립니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힘찬 출발을 알렸다. 왼쪽부터 시나리오 이동은, 단편소설 송지현, 시조 조은덕, 시 이병국, 동화 이수안, 희곡 최준호, 영화평론 이채원, 문학평론 임세화, 중편소설 고송석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작년부터 영화에 매달렸다. 하지만 쓴 시나리오는 번번이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열패감에 시달렸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써보자.’ 그렇게 ‘당부’란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강원도 횡성으로 길을 떠났다. 1월 촬영에 들어가는 저예산 영화의 촬영장소 물색을 위해서였다.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강원도. 동아일보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셨습니다.” 같이 간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말없이 저녁 식사로 앞에 놓인 산채비빔밥을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었다. 믿기지 않았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된 이동은 씨(35)는 횡성의 한 식당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다. 꿈을 향해 걸어가는 어려운 길에 다시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제일 먼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속 인물들의 외로움이 덜해질 것 같아서요.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신춘문예 투고자들은 연말이면 한 통의 전화를 기다린다. 신문사에서 오는 당선 통보 전화다.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881명 가운데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단 9명. 209분의 1의 확률이다. 공동 인터뷰를 위해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당선자들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표정이었다.

“(당선 전화가 왔을 때) 집에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있었어요. 데커드가 유니콘 환상을 보는 장면을 막 지나갔던 때라서 ‘꿈인가, 조작된 기억인가’ 했어요.”

시 부문 당선자인 이병국 씨(33)는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시를 썼다. 올해 ‘제법 괜찮게 나온’ 작품이 있어 6년 만에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려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인하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정작 지도교수나 학우들에게는 당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믿을 수가 있어야죠. 직접 신문사에 와서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연락하려고요. 하하.”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송지현 씨(26)의 당선 소감은 콩트 같다. “이틀간 씻지 않은 채로 전기장판에 누워 있었다. 케이블 TV에서 나오는 랩을 따라하는 중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스팸전화로군….’”

경기예고 만화창작과,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배우고 있는 송 씨는 부단히 배우고 열심히 쓴 젊은 작가. 신춘문예는 도전 네 번 만에 당선됐다. “옛날부터 ‘열심히’라는 재능을 가지고 싶었어요. 이제 그걸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요. 피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색 경력의 당선자들도 눈에 띄었다. 시조 부문 당선자인 조은덕 씨(48)는 ‘탤런트 출신 작가’가 됐다. 김수현 작가의 2006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정자 어머니’ 역할을 비롯해 드라마에서 감초 연기를 충실히 한 중견 배우다. 문학수업이라고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시 강의를 받은 게 전부. 도전 세 번째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당선 소식을 접하고는 제일 먼저 백화점으로 갔다고. “‘앞으로 갈 데가 많을 것 같아 구두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군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 사지 못했어요. 상금 타면 다시 가야죠.”

시조시인으로 인생 2막을 열게 된 조 씨는 “신춘문예를 통해 제 작품을 인정받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TV 문학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인 임세화 씨(29)는 2007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당선된 소설가이기도 하다. 동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그가 당선 소식을 주위에 전하자 “놀랍다” “예상 밖이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소설과 평론을 병행하고 싶어요.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긴 기다림 끝에 당선의 영광을 안은 사람들도 있다.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고송석 씨(45)는 13년간의 도전 끝에 신춘문예 당선자에 이름을 올렸다. 해마다 신춘문예 2, 3곳에 응모한 것을 감안하면 30여 번의 투고 끝에 당선된 것. 홍익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연구실에서 평소처럼 글을 쓰고 있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선의 기쁨을 소설가 이문열 씨와 나눴다.

“1999년부터 2년간 이문열 선생님이 운영하는 ‘부악문원’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당선 소식을 전하자 선생님이 ‘아우∼ 잘됐다. 축하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당선이 됐구나’라는 실감이 나더군요.” 10년이 넘는 습작 기간 동안 써놓은 중·단편 소설만 10편이 넘는다는 그는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당선의 영광은 때론 갑자기 찾아온다. “꼭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신춘문예) 마감 전날 하루 만에 써서 투고했다. 당선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인 이채원 씨(46)는 서강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마친 문학도. 평소 영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문학평론이 아닌 영화평론으로 등단하는 ‘의외’의 행운을 가져다줬다. “평론은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감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다면 감동적인 영화 같은 평론을 쓰고 싶습니다.”

희곡 부문 당선자인 최준호 씨(24)는 희곡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서울예술대 극작과 2학년인 그는 스무 살 때 처음 접한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 자취방에서, 군에서는 일과가 끝난 뒤 생활관에서, 다시 제대 후에는 자취방과 집에서 습작을 멈추지 않았다. 3년 동안의 노력은 이번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제 꿈은 배우, 연출, 극작을 함께하는 연극인이 되는 겁니다. 인간과 사회를 담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꾸준히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해 마침내 결실을 이뤄낸 것은 동화 부문 당선자인 이수안 씨(31)도 마찬가지다.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와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 씨는 ‘동화 공부에 대한 갈증’으로 다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가 하는 서울예술대 강의에 청강생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황선미 선생님이 축하를 해주셔서 매우 기뻤어요. 집에서 당선 통보를 받고 나서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와∼∼’ 하고 소리를 질렀죠.”

이 씨가 되고 싶은 작가상은 ‘키가 작아지는 작가’다. “아이의 시선과 아이의 마음으로 눈을 낮추고 싶어요. 늘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습작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예작가#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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