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다른 분야 책 세권 오전-오후-밤에 돌아가며 읽어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 독서 고수들이 전하는 새해 책읽기 ‘작심365일’ 성공법

새해가 되면 누구나 습관처럼 ‘제2의 정약용’을 꿈꾼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다독의 힘을 바탕으로 일생 동안 500권에 가까운 방대한 저서를 집필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독서광’인 정약용의 경지까지는 못 이를지라도 그 언저리에라도 도달하겠노라며 ‘1년에 100권 독파’와 같은 새해 독서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야심 찬 독서 계획은 금방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시간이 없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등 독서를 포기해 버리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런 이유들로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이 읽은 종이책 수는 9.9권에 불과했다.

우리 주변의 숨은 독서 고수들은 몇 가지 독서 노하우만 알면 새해의 충만한 ‘독서 패기’를 연말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4인의 고수에게 사소하지만 알찬 독서 노하우를 들어봤다.

작은 가방을 들어라
“가방을 최대한 작은 걸로 바꿔 보세요.” 윤정은 작가(29·여)는 연간 책 400∼500권을 읽으며 다진 박학다식함을 바탕으로 2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종이책과 전자책을 포함해 8권의 서적을 출간했다. 그가 추천하는 독서 노하우는 “큰 가방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것. 책을 읽겠다며 가방 안에 책을 넣고 나갔다가 며칠이 지나도록 꺼내 보지 않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윤 작가에 따르면 이따금씩이라도 책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작은 가방을 들고 책은 손에 든 채 외출한다면 틈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 보게 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책이 있어야 일단 펼치게 된다는 것이 핵심. 그는 “책을 들고 다니면 꼭 누군가가 ‘그 책 무슨 내용이야?’ 하고 물어본다. 그들에게 책 내용을 말해주기 위해서라도 들고 있던 책을 읽게 된다”고 했다.

읽다 만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사소한 노하우’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읽은 부분을 다시 읽자니 귀찮고 중간부터 읽자니 앞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치지 않는다. 윤 작가는 “읽은 부분은 다시 읽지 말라”고 했다. 그 대신 책을 중간까지 읽고 난 뒤에는 반드시 책 여백이나 메모지에 줄거리를 두세 줄 정도로만 간략하게 정리해 놓을 것을 조언했다. 시간이 지나고 책을 다시 펼쳤을 때 큰 맥만 짚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간략하게 정리된 메모는 앞부분의 내용이 하나둘 떠오르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으려고 해도 시간 관계상 금방 책을 덮어야 해 맥이 끊긴다. 그 때문에 책을 아예 읽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직장인들에게 그는 “상황에 맞는 책을 선별해 보라”고 조언했다. “요즘은 아주 짧은 단편이 수십 개 묶여 있는 책이나 서로 다른 주제의 단락으로 촘촘하게 나눠져 있는 책도 많거든요.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면 한 단락을 읽을 수 있어요. 상황에 맞게 들고 다니는 책을 달리하면 독서에 대한 흥미가 배가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번에 세 권 이상 읽어라
이지현 씨(24·여)는 대학 휴학 중이던 2010년 “책이 정말 좋은지 직접 실험해 보겠다”며 120일 동안 책 100권을 읽은 독서 고수다. 성균관대 졸업생인 그는 당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지난해 독서 멘토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6년제 약학대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지금도 1년에 100권에 가까운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빡빡한 수험생활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바로 ‘절대 한 번에 한 권만 보지 않는다’는 철칙이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 한 권을 다 읽은 다음에 다른 책을 봐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 거 같더라고요. 한 권의 책과 그 책의 분위기에 며칠 내내 빠져 있다 보면 지겹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한 번에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책을 3권 이상씩 돌려 가며 봐요.”

120일 동안 100권을 읽었을 때도 이 방법을 썼다. 아침에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자기계발서를, 오후에는 ‘판스워스 교수의 생물학 강의’라는 과학서적을, 저녁에는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라는 역사서를 보는 식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책을 보다 보면 지겹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세 가지 분야에 대해 알아 간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빈 메모지를 마구 붙여라
이 씨는 하루 생활리듬에 맞게 책 분야를 정해서 읽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침에는 하루 시작의 활력이 되는 자기계발서를, 오후에는 인지적 노력이 크게 요구되는 과학서적을, 밤에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소설이나 역사서를 읽으라는 것이다.

독서교육전문가 문성준 씨(30·크레벤지식서비스 R&D 팀장)는 일단 책을 사면 표지를 넘겼을 때 나오는 백지에 접착식 메모지를 한가득 붙여 놓는다. 이렇게 하면 언제라도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에 인덱스 형식으로 메모지를 붙여 놓을 수도 있고 특정 페이지의 글귀를 옮겨 적거나 당시의 느낌 등을 적어 붙일 수 있다. 그는 “빈 메모지를 한가득 붙여 놓는 행위는 독서를 하기 전 빼놓아서는 안 될 의식이자 준비운동”이라며 “이 사소한 행위가 독서 동기를 높이는 중요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과속 읽기법’도 추천했다. 책을 읽기 전 책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는 단계를 거치라는 것. 5∼10분이면 족하다. 문 씨에 따르면 일단 책을 훑어보며 책의 구조와 이미지에 익숙해져야 본문을 읽을 때 책이 한결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온다. 책의 구조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읽기 시작하는 것은 지도 한 번 보지 않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처럼 ‘일’을 어렵게 만든다. 그는 머리말 읽기도 강조한다. “머리말에는 저자가 책을 쓰면서 했던 생각,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 등 알짜배기 내용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머리말을 읽는 것만으로도 책 구조와 전체 이미지가 파악되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책 속에 다음 책이 있다
독서를 포기하는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서 책을 안 보게 됐다”는 말이다. 기업에서 독서법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양정훈 씨(37)는 “책 속에 다음 책이 있다”고 했다. 그가 추천하는 ‘읽을 책 찾아내는 방법’은 바로 ‘하이퍼링크 독서법’이다.

일단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책 한 권을 읽는다. 그 책 속에 저자가 소개한 책, 인용한 책이 적어도 열 권 이상 나올 것이다. 양 씨는 최근 ‘철학자의 서재’라는 책을 읽으며 그 속에서 30여 권의 새로 사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해 구입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추리고 추려낸 명작을 저자에게서 직접 추천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보다 더 좋은 책 고르기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유행에 휩쓸리지 말 것도 당부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해서 자신의 수준을 무시하고 모르는 용어들로 가득한 인문학 책을 읽는 것보다 쉽게 쓰인 연애학 서적 한 권을 읽는 게 나을 수 있다는 것. “연애학도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거기에 인문학의 조각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책과 친해지다가 단계를 높여 가야 고전도 읽을 수 있는 거죠. 누군가가 우습게 볼 수 있는 책이 다른 누군가에겐 독서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O2#독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