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通한 시장통… 김광석이 웃고 예술인이 발길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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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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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핀 전통시장 예술화 프로젝트

통인시장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아름드리 가게’의 사장 채옥희 씨(46)는 인근 서촌에 산다. “전통시장의 활기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는 그는 가게를 전시 공간이자 작업장으로도 이용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통인시장에서 수공예품을 파는 ‘아름드리 가게’의 사장 채옥희 씨(46)는 인근 서촌에 산다. “전통시장의 활기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는 그는 가게를 전시 공간이자 작업장으로도 이용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진 찍어요? 사진 찍으면 1000원!”

전북 전주 남부시장 2층엔 ‘레알 뉴타운 청년몰’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20, 30대 젊은 장사꾼 20여 명이 이곳에 가게를 열었는데 이들 중 여럿이 재활용 전문 섬유공예가, 청바지 리폼 전문가, 식충식물 원예가 등 ‘B급’ 취향의 예술가다.

청년몰에 입주한 공방 ‘나는 나’는 섬유공예가인 주인 김도임 씨(39)가 버려진 물건을 재료로 가방과 모자,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사진 찍으면 젊은 예술가에게 1000원의 후원금을 줘야 한다’는 내용의 메모가 이곳에 붙어 있다. 김 씨는 “수제품으로 가격이 싸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물건은 사지 않고 사진만 찍어서 고육지책으로 써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예상 밖으로 호주머니가 넉넉지 않은 젊은 고객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후원금’인 만큼 반드시 돈을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방문객 대부분이 1000원씩 내고 온갖 물건을 몸에 걸친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다. 기자가 방문한 2일 오후에도 30여 명의 사람이 공방 안에서 다양한 ‘코스프레’를 즐기고 있었다.

전주 남부시장은 호남 지역 최대의 물류 집합지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도매 시장이 시 외곽으로 빠져나갔고 2000년대 들어선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건물 2층은 점포가 다 빠져나가 창고로 쓰이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2층에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지난해 말부터 둥지를 튼 것이다.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가게도 많아지고 주말엔 공연이나 축제, 야시장 등이 펼쳐지는 덕에 청년몰은 이 지역 명소가 됐다.

자연스레 유입인구가 늘었고, 젊은이가 드나들면서 시장 분위기도 밝아졌다. 실제로 남부시장은 청년몰이 들어선 후 시장 내 음식점의 평균 매출이 30%가량 증가했다. 청년몰을 기획, 운영 중인 김병수 이음 대표는 “청년몰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이 인근 전주 한옥마을에 머무는 관광객의 방문 코스가 됐다”고 밝혔다.

이 전주 남부시장은 전통시장이 예술과 통(通)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젊은 예술가들이 시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보니, 재래시장이 ‘재미있어 다시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대구 방천시장은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내세워 시장 분위기를 확 바꿨다. 2009년부터 방천시장 빈 점포에 입주하기 시작한 지역예술가들이 김광석이 방천시장 인근에 있는 대봉동 출신이란 점에 착안해 2010년 11월부터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란 행사를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시장 바로 옆 골목길 벽에 김광석의 초상과 노랫말 등을 그려 넣은 것. 금속공예가인 이우열 대구과학대 교수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된 후 방천시장의 유입 인구가 3배 이상 늘었고 특히 20, 30대 젊은이의 유입률은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도 인근 ‘서촌’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가게가 늘기 시작했다. 올해 5월 문을 연 수공예품 공방 ‘아름드리 가게’는 수시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탈바꿈한다. 10일까지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 학생들이 만든 태블릿PC 휴대용 장식 가방을 전시한다. 이 가게 맞은편 ‘천수건강원’은 옛 상점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실제론 목공예품 공방이다. 정흥우 통인시장 상인회장은 “경복궁, 광화문, 청와대 등이 주변에 있어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온다”고 밝혔다.

대구 방천시장은 시장 바로 옆 골목길에 김광석 거리를 조성한 후 20, 30대 젊은이의 유입 인구가 지난해에 비해 올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동아일보DB
대구 방천시장은 시장 바로 옆 골목길에 김광석 거리를 조성한 후 20, 30대 젊은이의 유입 인구가 지난해에 비해 올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동아일보DB
이런 전통시장의 예술화 프로젝트는 정부나 해당 지자체의 지원으로 시작됐다. 전주 남부시장은 2011년부터 3년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 대구 방천시장은 2009년 상반기에 대구 중구청, 2009∼2011년 문전성시 지원을 받았다. 서울 통인시장은 서울시와 종로구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금은 예술가 상인들이 주로 공방 겸 점포를 만드는 비용이나 월세 등을 충당해주고 각종 축제 및 행사 비용으로 들어간다.

지원은 ‘양날의 칼’이다. 지원이 끊어지면 시너지효과도 시들해진다. 대구 방천시장의 경우 올해 지원이 끊기자 이미 만들어진 ‘김광석 길’을 빼곤 다른 문화행사가 사라졌다.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는 “‘시장에서 예술가가 물건을 만들어 판다’는 배경이 아니라 물건 자체로 승부를 봐야 한다”며 “오직 이 시장, 이 가게에서만 살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야만 예술가 상인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이지은·송금한 기자 smiley@donga.com
#예술#시장통#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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