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곡성 최초 리어카로 장사 “시장의 스타였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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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 3대째 장돌뱅이 안태식씨 가족

“이렇게 키워놨는데 아쉬워. 우리가 10년만 젊었으면 좋을 것인디.” 안태식 씨 (가운데)는 취급하는 잡곡 수로 치면 전남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21일 전남 곡성군 곡성읍 안성미곡에는 안 씨의 부인 오덕순 씨(왼쪽)와 맏딸 안영란 씨의 호탕한 웃음이 자주 들렸다. 곡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렇게 키워놨는데 아쉬워. 우리가 10년만 젊었으면 좋을 것인디.” 안태식 씨 (가운데)는 취급하는 잡곡 수로 치면 전남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21일 전남 곡성군 곡성읍 안성미곡에는 안 씨의 부인 오덕순 씨(왼쪽)와 맏딸 안영란 씨의 호탕한 웃음이 자주 들렸다. 곡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손. 까슬까슬한 잡곡을 무수히 헤집어 거친 손. 170cm 키의 다부진 체격과 닮은 탄탄한 손. 농사를 짓거나 바닷일을 해서 굳은살이 박인 것과는 달리, 잘 말린 흰쌀처럼 물기가 없는 손가락. 맏딸은 “아버지의 인생이 함축된 손”이라고 했다.

정작 손의 주인공인 일흔한 살의 안태식 씨는 무덤덤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한 손 엄지로 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위아래로 찬찬히 매만지며 말했다. “말을 다 하려면 끝도 없어부러. 그저 열심히 항께 먹고 살지, 열심히 항께. 열심히 일하면, 못 살 수가 없대요.”

“겁나 못 살았지”
그의 아버지는 가난했다. 일제강점기 때 탄광으로 징용을 다녀온 뒤로 천식에 시달렸다. 몸이 안 좋으니 험한 일을 할 수 없었고 돈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 안태식 씨가 다섯 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살길을 찾아 곡성 읍내로 이사를 나왔다. 말이 이사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채소를 팔았다. 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며 무를 100여 개씩 읍내로 옮겨 팔았다.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안 씨가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세상을 떴다. 그는 열일곱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려야 했다.

아버지를 계속 지켜본 탓이었을까.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밑천이 없었다. 그는 이숙(姨叔·이모부)을 찾아갔다. 이숙은 산골 마을 곳곳을 돌며 쌀을 받아와 읍내 사람들에게 되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이숙, 내가 장사를 좀 해볼란디 좀 도와줄랑가 모르겄소?” 잠시 고민하던 이숙이 밑천 할 돈을 내어줬다. 쌀보다 시세가 낮은 보리로 안전하게 시작하라는 충고도 해줬다.

하지만 그는 보리 대신 소금을 샀다. 마을을 돌며 소금과 보리를 교환해 이문을 남길 셈이었다. 당시에는 소금이 귀했던 데다 곡성은 바닷가와 멀어 벌이가 짭짤했다. 소금 한 말에 보리 서 말씩을 받았다. 받아온 보리는 곡성, 옥과, 석곡의 5일장 세 곳을 돌며 팔았다. 몇 년 뒤에는 소금 대신 명태를 들고 다녔다. 명태는 소금보다 몇 배는 인기가 좋았다. 명태 맛에 반한 사람들은 보리를 가마니째 내놓기 시작했다.

마을을 돌 때면 항상 끼니를 걸러야 했다. 들에 있던 농촌 사람들은 밥때가 되어야 집에 들어왔는데, 그 시간에 맞춰 마을을 돌고 나면 항상 밥 먹을 시간이 부족했다. 배가 고프면 길에 있는 감을 따먹고 건빵도 사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가끔 비가 많이 와 섬진강이 불어 읍내로 넘어올 수 없을 때면, 집에서 30리(12km) 떨어진 북소마을 술집에서 하루씩 묵었다. 그럴 때면 누가 훔쳐갈 새라 항상 물건 판 돈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간밤에 누가 돈을 들고 가면 찾을 길이 없는 시절이었다. “여엉 곤란한 세상, 말도 못하게 곤란한 세상이었제.”

곡성군 1호 리어카
1960년대 말 그는 곡성에서 처음으로 리어카를 샀다. 시골 사람들은 리어카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나락(벼) 열다섯 가마니를 나르려면 지게로는 세 명이 낑낑대며 하루 종일 옮겨야 했다. 리어카를 쓰면 두 배가 넘는 양을 두 명이서 한 번에 옮길 수 있었다.

리어카는 여러모로 안 씨의 보물이었다. 한 번은 북소마을 술집에서 나락 스물 한 가마니를 사기로 했는데 동료의 일이 오후 5시에야 끝났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당연히 다음 날로 미뤄야 할 일이었지만, 그에겐 리어카가 있었다. 달밤에 북소마을로 향했다. 동료와 안 씨 두 사람은 밤이슬을 맞으며 쌀을 한 번 만에 읍내로 옮겨왔다.

이틀이 지나 술집에서 연락이 왔다. 한 번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오후 일찌감치 북소마을을 찾은 안 씨와 동료에게 술집 주인이 대뜸 삶은 돼지고기 한 접시를 내왔다. 고기 구경 하기도 힘든 시절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진수성찬에 당황했다. 쌀을 하루 빨리 팔아준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후했다.

비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쌀을 옮긴 다음 날 북소마을에 큰비가 와서 마을 곳간이 모조리 물에 잠긴 것이다. 리어카로 간밤에 물건을 옮기지 않았다면 술집의 벼도 고스란히 물에 잠겨 못 쓰게 될 뻔했다. 그렇게 곡성 1호 리어카 주인 안 씨는 군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리어카가 익숙지 않을 때는 좁은 내리막길에서 짐을 가득 실은 채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길을 가다 난데없이 나타난 승용차에 들이받히기도 했다. 20여 년 전 리어카 대신 트럭을 산 뒤에도 사고가 이어졌다. 보리를 잔뜩 싣고 돌아오는 밤길에서 담벼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운전사가 낮에 마신 막걸리가 덜 깬 것이 화근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안 씨는 이 사고로 72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안 씨는 장돌뱅이를 하며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30년 전쯤”이라고 회상했다. 1970∼80년대 그는 항상 바빴다. 그때가 그의 전성기였다.

아버지와 딸
취급하는 물건이 보리에서 쌀, 그리고 기타 잡곡으로 늘어나면서 안 씨 부부는 더 바빠졌다.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다들 학교에 다니느라, 직장 일을 하느라 일손을 돕지 못했다. 부부는 계속 나이를 먹어갔다. 일이 늘어나도 기쁘기보다는 힘에 부쳤다.

“난장판이 따로 없어야. 일손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물건만 넘겨주고 돈도 못 받고 별의 별일이 다 있는 거야. 나가 객지로만 돌아다녀서 집구석 사정을 몰랐던 거지.” 맏딸 안영란 씨(43)는 대학에서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집에 내려왔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그날부터 당장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일손이 늘어나니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10년 전부터는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찹쌀 20kg 주문이 들어오면 상자에 포장해 자전거에 싣고 택배 사무소에 일일이 가져다주던 것이 이제는 하루에만 택배 상자를 70∼80개씩 배송하는 ‘사업’이 됐다. ‘곡성 제1의 장돌뱅이’의 무대는 전국으로 바뀌었다.

안태식 씨는 요즘도 이른 새벽에 일어난다. 오전 6시쯤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곡성 곳곳을 돈다. 미리 계약해 놓은 물건을 받아오기도 하고, 근처 촌장(村場·읍내에 있는 장보다 작은 마을 장)에 나가 잡곡을 팔기도 한다. 하루 종일 곡성 곳곳을 다니다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친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은 곡성장 홍보를 하느라고 바쁘다. 원래 3일과 8일에 열리던 ‘왕장(王場·큰 5일장)’인 곡성장이 2009년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특성화사업을 시작한 뒤부터다. 그는 기차마을전통시장에서 5일장에 더해 추가로 열리는 ‘토요장’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가는 곳마다 입소문을 낸다. 인근의 옥과, 석곡에서 열리는 촌장과 토요장이 겹치면 부인은 물론 딸, 사위까지 동원해 장을 지킨다. “기차 타고 놀러와 봐요.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무지하게 많아부러. 쫌만 움직이면 증기기관차도 탈 수 있제. 애들이 엄청 좋아헌다고. 바깥사람들이 자꾸 와야 장이 더 커진당께.”

21일 오후 찾은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 안 씨의 좌판에는 쌀 메주콩 말린 고추가 가득했다. 잘 마른 잡곡에서 어렴풋한 비린내가 났다. 이틀 뒤 장을 준비하며 안 씨 가족이 둘러 앉아 장터에서 증정품으로 쓸 흑미를 포장하고 있었다. 지게부터 택배까지, 60년 가까이 이어지는 장돌뱅이의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곡성=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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