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8>비 내리는 가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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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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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웬만한 분들은 외기까지 할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시가 좋을까요? ‘만리심(萬里心)’에 끌려 11세에 당나라로 유학한 최치원(崔致遠·857∼?)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풀이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나라에서 지은 글을 모은 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에는 이 작품이 실려 있지 않습니다. 최치원이 신라로 돌아온 이후의 작품까지 모아 후대에 편찬한 ‘고운집(孤雲集)’에는 ‘만리심’이 ‘만고심(萬古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때에는 천고(千古)의 역사를 생각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고음(苦吟)’은 인생의 괴로움을 시로 노래한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시를 짓기 위하여 영혼을 소진한다는 뜻입니다. 또 한 해가 가는지,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붑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혼을 소진하여 후세에 남을 시를 쓰는 것밖에 없습니다. 원문의 ‘유(唯)’가 그런 뜻입니다.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까지 뿌리니, 한밤이 되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등불을 끄지 못합니다. 이럴 때에는 누구나 천리 만리 먼 곳으로 떠나고 싶겠지요. 그 뜻이 바로 ‘만리심’입니다. ‘만고심’이라 할 때에는 나 혹은 국가의 운명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어 천고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최치원은 유학한 지 6년 만인 874년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섰지만 경륜을 펼치지 못하고 10년 후인 27세의 나이에 신라로 귀국합니다. 그러나 신라 역시 청운의 큰 뜻을 펼치기에 너무 늙은 나라였습니다. 최치원은 방랑에 나섰다가 마흔 살이 채 되기 전에 은거를 결심합니다. 이 시는 아마도 이러한 시기의 작품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뜻을 펼치지 못한 지식인의 고뇌가 이 가을밤을 더욱 쓸쓸하게 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비 내리는 가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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