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저음이 내뿜는 소름끼치는 아름다움이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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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연광철 리사이틀 ★★★★★

묵직한 저음과 다채로운 감정표현으로 관객을 압도한 베이스 연광철. 고양문화재단 제공
묵직한 저음과 다채로운 감정표현으로 관객을 압도한 베이스 연광철. 고양문화재단 제공
세계적 바그너 베이스인 연광철 서울대 교수가 26일 고양국제음악제에서 펼친 리사이틀은 성악예술에서 ‘정금미옥(精金美玉)’의 정수를 보여준 무대였다. 2009년 12월 정명훈과의 슈베르트 ‘겨울여행’ 연주회 이후 가진 이번 리사이틀은 그로서도 국내에서 보여준 가장 큰 규모의 첫 번째 오페라 아리아 연주회다. 1부는 유럽 일주라 할 정도로 다양한 언어의 아리아로 구성했고, 2부는 그의 음악적 본령인 바그너의 아리아로 꾸몄다. 특히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는 그가 바이로이트에서 찬사를 받았던 배역인 만큼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첫 곡 차이콥스키 ‘예프게니 오네긴’ 가운데 ‘사랑의 위대한 힘 앞에’서부터 연광철은 환상적인 메사 디 보체(일정한 음을 길게 뻗으면서 서서히 크레셴도하다가 데크레셴도하여 끝나는 것)를 수반한 러시아어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저역의 아름다움과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우렁찬 음량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스’ 중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프랑스어 버전)와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에서 ‘나의 조국, 너 팔레르모’는 그가 이탈리아 베이스 역에도 얼마나 정통한가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돌직구 같은 저음과 처절한 감정표현, 폐부를 찌르는 듯한 정확한 음정과 절제의 아름다움으로 객석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들려왔다. 2008년 빈 슈타츠오퍼에서 찬사를 받았던 구노의 ‘파우스트’ 중 메피스토펠레스의 세레나데에서는 베이스 특유의 악마적인 힘과 자신감 넘치는 조롱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강렬하게 펼쳐냈다.

바그너 아리아로 구성된 2부는 성악가와 청중의 단결된 집중력으로 종교제례에 버금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파르지팔 중 ‘티투렐, 신앙심 깊은 영웅’은 탁월한 해석과 응축된 에너지가 빛을 발한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차례로 전개되는 성스러운 회상의 분위기, 분노에 찬 격앙된 감정, 구원에 대한 갈구의 독창적인 극적 표현력과 함께 베이스의 신비로운 마력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아름다운 저역의 향연과 폭발적인 격정을 거쳐 마지막 대사에서 작은 음량으로도 강렬한 설득력을 뿜어내는 모습에서 바이로이트 최고 베이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그렇지 않습니다’에서 펼쳐낸 아름다움도 경이로웠을 뿐만 아니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네가 진정으로 그랬단 말인가’에서 보여준 변화무쌍한 감정표현과 선명한 딕션 전달력, 애증 심리의 드라마틱한 전개에 청중은 음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1부에서 들었던 메피스토펠레스의 그 섬뜩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공연 리뷰#연광철#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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