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은 서울여대명예교수 ‘세밀화로 보는 한국의 야생화’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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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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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한 터치, 사진보다 정확

“카메라가 등장하고 나서 세밀화가 사라질 줄 알았어요. 카메라 렌즈보다 더 정확하게 식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세밀화가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40년 넘게 식물원예학을 연구해 온 윤경은 서울여대 명예교수(69·사진)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의 생태와 약효, 재배법을 담아 책 ‘세밀화로 보는 한국의 야생화’(김영사)로 펴냈다. 서울여대 총장을 지낸 그가 정년퇴임 후 경기 이천 8264m²(약 2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관찰하며 기록해 온 결과물이다. 잡초와 돌투성이였던 불모지는 그동안 꽃과 채소, 포도원과 온실이 있는 작은 낙원으로 바뀌었다. 사시사철 다른 꽃이 피어나는 그의 농장엔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한창이다.

“식물학을 연구하면서 독일, 영국 등에서 펴낸 세밀화 도감을 많이 봐 왔어요. 1980년대 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더니 복도에서 한 여성이 직접 그린 꽃그림을 팔고 있더군요. 부러워서 그 뒤 저도 세밀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윤 교수는 세밀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관찰력’을 꼽는다. 세밀화를 그리다 보면 평소에 안 보이던 꽃잎의 방향, 겨울눈 모양 하나하나까지 새롭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세밀화를 배우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카메라는 초점이 한 곳입니다. 접사로 촬영하다 보면 한 부분만 잘 보이고, 다른 부분은 흐릿하게 나와요. 또한 꽃잎 속의 수술은 안 보이는 경우도 많죠. 반면 세밀화는 꽃의 속 부분 단면도까지도 보여줄 수 있고, 땅속의 뿌리도 그려 넣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창조적인 세밀화가 유행입니다.”

윤경은 교수와 한국식물화가협회가 함께 펴낸 ‘한국의 야생화’에 실린 ‘꿩의비름’ 세밀화. 둥글고 분백색이 도는 원줄기가 곧추 자라 30∼90cm 높이에 이르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김영사 제공
윤경은 교수와 한국식물화가협회가 함께 펴낸 ‘한국의 야생화’에 실린 ‘꿩의비름’ 세밀화. 둥글고 분백색이 도는 원줄기가 곧추 자라 30∼90cm 높이에 이르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김영사 제공
그는 2007년 11월 세밀화를 그리는 사람들과 한국식물화가협회를 창립했다. 회원 수는 200명. ‘한국의 야생화’에는 협회 회원들이 함께 그린 야생화 세밀화 그림 100컷이 나온다.

“일반인들도 백화점이나 대학 부설 아카데미에서 세밀화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세밀화는 수채 색연필만 있으면 집안, 공원 등 어디에서나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들도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된다고 말해요.”

국내 세밀화의 유행은 1990년대 말 ‘보리어린이 동식물도감’ 시리즈에서 시작됐다. 갯벌도감, 나무도감, 곤충도감 등을 펴낸 보리출판사는 최근에는 ‘약초도감’을 발간했다. 2002년 감옥에서 길렀던 야생초를 그린 엽서를 모아 펴냈던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도솔)도 감성적인 글과 예술성 높은 세밀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윤 교수는 “어린이들도 세밀화를 배우면 자연에 대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 중에는 음지에서는 정말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데 양지에 옮겨 심으면 비실비실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어린아이가 크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지에 어울리는지, 양지에 어울리는지 배려하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끌고 나가다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꽃과 나무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살이를 배우게 됩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밀화#윤경은 서울여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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