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석표]농촌마을 소재로 중국적 향토색 추구해 서구에 어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석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
홍석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중국인 작가로서는 2000년 가오싱젠(高行健)의 수상 이후 두 번째에 해당한다. 하지만 가오싱젠은 1980년대 중국을 떠나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프랑스 국적으로 상을 받았으므로 중국 국적을 가진 대륙 작가로서는 모옌이 첫 수상자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백과 두보 그리고 소동파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전통적으로 문학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문호 루쉰(魯迅)의 문학전통이 살아 숨 쉬고 여러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바진(巴金), 베이다오(北島) 등 쟁쟁한 작가들이 많지 않았던가. 이제야 중국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보유하게 되었으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모옌은 본명이 관모예(管謨業)로서 1981년 등단하면서 ‘말이 없다(莫言)’는 뜻의 필명인 모옌을 사용하였는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오히려 ‘말이 없지’ 않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는 한중 작가교류의 일환으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회를 가진 지한파 작가이기도 하다. 그때 그를 만나본 필자의 기억으로는 수수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물론 그의 눈빛은 날카로우면서도 무척 반짝였다.

모옌은 그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목되어 왔기에 이번의 수상이 의외의 일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 많은 언어로 번역된 것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주요 작품은 대부분 번역되어 나왔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1987년 작 ‘홍까오량 가족’을 위시하여 노벨 문학상 후보작으로 일컬어져온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의 나라’ 그리고 ‘탄샹싱’, ‘풀 먹는 가족’, ‘인생은 고달파’ 등이 이미 국내에 번역되어 일정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홍까오량 가족’은 장이머우 감독이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로 만들면서 일약 유명해진 작품인데,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인 산둥 성 가오미 현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의 항일 무장투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투박하지만 향토적이고 원시적인 생명력이 넘친다. 같은 산둥을 배경으로 한 중국 전통소설 ‘수호전’을 연상시킨다.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는 1980년대의 작은 농촌 마을 티엔탕에서 벌어진 마을 사람들의 봉기사건을 통해 개방화 이후 중국 대륙이 당면한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모옌의 작품은 향토색이 짙은 중국인(민간)의 생명력과 힘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서사방법이나 해학 면에서 두터운 전통을 깔고 있다는 점,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모옌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것이 아닐까.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이 서방의 모더니즘 서사방식에 중국의 전통 서사를 가미하여 ‘영혼의 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개인의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중국 문화의 기원)을 찾고 있듯이 모옌의 작품도 짙은 중국적인 향토색을 추구하고 있어 두 작품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중국적인 향토색은 서양인들에게 이국적인 맛으로 작용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모옌의 수상은 중국 현대문학의 저력을 확인시켜주는 일이다. 이는 세계문학 속으로 나아가는 중국 현대문학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오늘날 국내 독자들에게 중국 현대소설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번 모옌의 수상으로 우리에게 한층 친숙해지길 기대한다. 더욱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우리가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석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
#모옌#노벨 문학상#중국적 향토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