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뿌리째 뽑힌 수령 600년 천연기념물, 괴산 왕소나무 되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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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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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나이로 90세… 뿌리 쇠약해 회생여부 불투명

지난달 28일 태풍 볼라벤의 강한 바람에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충북 괴산 삼송마을의 왕소나무. 전문가들이 뿌리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나무를 눕힌 채로 회생시키기로 결정해 왕소나무가 당당히 일어선 모습(아래 사진)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괴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지난달 28일 태풍 볼라벤의 강한 바람에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충북 괴산 삼송마을의 왕소나무. 전문가들이 뿌리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나무를 눕힌 채로 회생시키기로 결정해 왕소나무가 당당히 일어선 모습(아래 사진)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괴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의 왕소나무(王松·천연기념물 290호·수령 600년). 높이 12.5m, 몸통 둘레 4.7m의 당당한 몸집으로 열댓 그루의 소나무를 주변에 거느린 채 당당히 서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만인지상(萬人之上)의 풍모를 물씬 풍겼다. 줄기가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닮아 용송(龍松)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의 초속 20m 강풍은 600년 모진 세월을 견뎌온 삼송마을의 수호목(守護木)을 쓰러뜨렸다.

▶본보 2012년 8월 31일자 A16면
“태풍때 지키지 못해 죄송… 꼭 일어나세요”


왕소나무의 회생 작업은 짧은 시간 내에 치료해야 하는 종합병원의 골든타임을 연상시켰다. 문화재청과 괴산군은 나무가 쓰러진 후 네 시간 만에 뿌리 부위에 흙을 덮은 후 가지를 치며 영양제를 투여하는 등의 응급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다음 날 태풍 덴빈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뿌리가 마르지 않는 데 도움이 됐다. 문화재청은 다시 전문가 회의를 소집해 나무를 쓰러진 그 상태에서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 무리해서 세울 경우 약 8t이나 되는 나무 무게에 남은 뿌리 부위가 손상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회생에 드는 예산만 1억 원이 책정됐다.

7일 기자가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에는 회생 작업이 한창이었다. 붉은 수피(樹皮)와 두꺼운 밑동, 하늘로 솟구친 구불구불한 줄기, 푸른 솔잎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뿌리가 뽑힌 채 흙바닥에 누웠지만 나무는 여전히 거대했다. 나무를 지탱하는 지주목(支柱木)을 세우고 뿌리 부위에 발근촉진제를 바르고 햇볕을 가리는 차광망 등을 설치했다. 벌레가 달라붙거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잎 근처 가지만 제외한 채 나무 전체를 상아빛 녹화마대(붕대 역할을 하는 헝겊)로 칭칭 감았고 영양제 주사를 놓았다. 작업자들은 쉼 없이 철제 지지대를 오르내렸다.

왕소나무와 이 마을은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삼송(三松)이라는 마을 이름은 큰 소나무 세 그루가 있어 붙여진 것이다. 두 나무가 쓰러진 뒤 유일하게 남은 왕소나무는 이 마을을 지키는 신목(神木)이었다. 400여 명의 주민들은 1980년대 초까지 정월 보름에 왕소나무 앞에서 동신제(洞神祭)를 지냈다. 인삼과 고추, 벼농사를 짓는 동네 사람들은 풍년과 마을의 안위를 빌었다. 한 해 동안 가장 ‘운에 흠이 없는’ 사람이 떡과 음식을 준비했고, 주민들은 냉수로 몸을 씻고 참여했다.

○ “내년 봄에야 회생여부 판단”


왕소나무의 운명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다. 왕소나무에 대한 믿음에도 변화가 없다.

그런 나무가 쓰러졌으니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종구 삼송1리 이장은 “아직 명이 붙어있는데 저렇게 천으로 싸매놓으니 마치 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 권순덕 씨도 “부모를 방치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왕소나무가 쓰러진 원인에 대해 “수령이 오래돼 땅속 3∼5m 깊이로 내려간 직근(直根)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뿌리가 쇠약해진 상황에서 태풍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회생 여부 역시 뿌리, 즉 손상되지 않은 뿌리가 얼마나 살아남아 제 기능을 하느냐에 달렸다. 문화재위원인 정종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조경학과 초빙교수는 “지금 당장 회생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다. 내년 봄 새순이 나오는 것을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고사(枯死)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길 한강나무병원 원장은 “왕소나무가 사람으로 치면 90세 노인과 다름없는 노거수(老巨樹)인 데다 뿌리가 심하게 손상돼 ‘반짝’ 살아난다 해도 앞으로 오랫동안 생존하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 끝내 ‘세상’을 뜬다면?

현재 괴산군청과 문화재청에는 “왕소나무가 고사한다면 몸통을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사목은 일반에 판매되지 않는다.

왕소나무가 고사한다면 먼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다. 1990년 후 태풍과 낙뢰, 생육환경 불량 등의 이유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식물(수령 200년에서 600년 사이의 노거수)은 총 17종에 이른다(표 참조).

해제가 결정되면 고사목은 나무의 소유주인 지역 주민과 관할 지자체 등이 논의해 처리한다. 2007년 낙뢰로 고사한 전북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에 있던 수령 400년의 곰솔은 2008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지만 송진 등을 발라 방부처리를 한 후 5년 가까이 원래 자리에서 보존됐다. 주민과 망성면, 문화재청은 고사목을 6개의 표본목으로 만들어 대전의 천연기념물센터와 망성면 주민센터, 마을 도서관 네 곳에 전시하기로 협의했다. 지난해 8월 나무를 자르기 전에는 주민들이 모여 제례를 지내기도 했다. 곰솔이 있던 그 자리에 후계목(後繼木·천연기념물에서 종자 등을 채취해 육성한 나무)을 심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한다.

왕소나무의 향후 ‘거취’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최근 방부 및 보존처리 기술이 좋아져 왕소나무가 고사해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며 “이 나무의 경우 ‘부모목’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주변에 후계목이 형성돼 별도의 후계목을 심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괴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괴산 왕소나무#천연기념물#볼라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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