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착한 청년’ 러시아서 ‘재미’를 배워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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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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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태형 리사이틀 ★★★★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대담하면서 강렬한 타건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대담하면서 강렬한 타건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6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지난해 10월 독주회 이후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적어도 연주의 겉모습만큼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타티야나 니콜라예바를 이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여류 피아니스트인 스승 엘리소 비르살라제를 따라 모스크바로 이사해 1년을 넘긴 김태형은 강력한 역동성으로 무장한 러시안 피아니즘을 지향했다.

이 같은 변화는 피날레로 연주한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에서 정점을 찍었다. 20세기 세계를 주름잡은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스쿨(학파)의 정수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다이내믹의 요동이다. 1악장에서 연속적으로 모티브가 또 다른 모티브를 낳으며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김태형의 솜씨는 놀라웠다. 착 가라앉은 2악장에서는 작곡가가 살았던 소비에트 시절로 회귀해 비참한 삶의 조각을 담담하게 노래하면서 애가(哀歌)로 바뀌었다.

후반부, 아스라이 들려오는 러시아 정교회 종소리의 묘사는 러시아에서 살아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김태형만의 특권이다. 70년 전 프로코피예프가 모스크바 음악원 말리홀에서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가 이 곡을 초연할 때 두 번째 줄에서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설령 모른다 해도 말리홀을 제집처럼 매일같이 드나드는 김태형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김태형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스승 강충모에게 지독스럽게 전수받은 순진무구한 인간미다. 첫 곡, 베토벤의 론도 G장조를 노래하는 그의 심성은 페달 사용을 극히 절제하며 마치 바흐 음악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베토벤 ‘고별’ 소나타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건반으로만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는 것)를 구현하는 탁월한 기교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페달 밟기로 손쉽게 레가토를 완성하는 다른 연주자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여기에 극심한 다이내믹의 널뛰기는 베토벤 음악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김태형은 늘 착했다. 그건 그가 외치는 ‘진실’과 일맥상통했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버액션’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얼핏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김태형은 재미를 배워왔다. 투리나의 춤곡을 연주할 때 함께 율동하고,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에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감으로 객석을 초토화했다. 또한 바흐의 ‘카프리치오’를 필두로 들려준 세 곡의 앙코르는 이제 ‘연주자’에서 ‘예술가’로 한 단계 격상한 김태형의 따뜻한 인간미를 확인하게 한 본보기였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김태형#리사이틀#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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