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부장이 괴롭혀 살맛 안 날 때 통쾌한 복수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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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로 공격해 볼까… 상상속에서 한 방 날릴까
■ 성인남녀 1600명 설문조사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직장 생활 7년차 오 대리(32). 오늘도 중얼거린다.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모든 건 몰래카메라다. 저 인간은 좋은 상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려고 나타난 요정임에 틀림없다.” ‘요정’ 김 부장을 만난 지 3년째. 오 대리는 아침마다 자기 최면을 건다.

김 부장은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주식 거래 프로그램에 눈을 고정한다. 위험성이 크다는 선물 투자에 손을 댄 뒤로 더 예민해졌다. 부하 직원들은 사춘기 소녀가 빙의된 그에게 말을 걸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긴장한다. 주식 시장이 끝나는 오후 3시에야 업무를 시작하는 김 부장 탓에 부서의 업무 처리는 매일 늦어진다. 부서의 퇴근 시간은 오후 10시를 넘기기 일쑤다.

오후 3시. 주식이 바닥을 쳤는지 김 부장이 본격적으로 직원들을 들볶기 시작한다. 집중 포화 대상은 만만한 오 대리. 왜 결재서류 끝이 접혀 있냐. 너는 무슨 이유로 나보다 회의실에서 먼저 나가느냐 등 꼬투리 잡기가 대부분이다. 잔소리의 마무리는 늘 이렇게. “이 시정잡배보다 못한 놈!”

‘시정잡배’ 오 대리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다.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게 다 인생 아니겠어” 하다가도 불쑥불쑥 3년 치 복수심이 끓어오른다. “저 인간… 내 기필코 복수하리라!”

○ 세상의 절반, 복수심 숨긴 오 대리


오 대리이거나 아니거나. ‘O₂’가 지난달 21일 SK마케팅앤컴퍼니 틸리언의 도움을 받아 성인남녀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수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다. ‘커피에 침 뱉기와 같은 유치하고 사소한 방법으로든, 아니면 잔인한 방법으로든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50.2%가 ‘있다’라고 답했다. 세상의 절반이 복수하고 싶어 한다.

김민수(가명·33) 씨는 신입 시절 사소한 실수에도 “꺼져!”라고 말하며 욕을 퍼부었던 팀장을 생각하면 지금도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주건호(가명·27) 씨는 이사 오자마자 집 천장에서 물이 새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이게 다 환기를 못한 당신 잘못이다”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온 집주인에게 꼭 복수하고 싶다.

세상의 절반이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정작 사소한 복수를 실행하거나 계획이라도 해본 사람은 33.8%에 그쳤다. 복수심에 불타면서도 이를 사소한 방법으로라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응답자의 40%는 ‘치졸하고 유치해 보일까봐’를 꼽았다. 복수를 옹졸하고 비열한 짓으로, 복수심은 숨겨야 할 비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증명이다. 미국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의 저서 ‘복수의 심리학’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1000년간 서구사회에서는 복수를 질병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돼 왔다. 복수는 더럽고 위험하고 부도덕한 짓이기 때문에 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미성숙한 행동으로 구분됐다.

그러나 복수심을 비정상적인 감정으로만 치부해 이를 풀지 못하고 쌓아만 두면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동우 인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스트레스 호르몬 농도가 높아지고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이 심해진다. 면역력이 약화돼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다. 심하면 우울증까지 나타날 수 있다.

○ 사소하게 복수하라

‘복수는 질병’이라는 주장에 맞서는 견해도 있다. 복수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는 의견이다. 감정 이론가인 니코 프리자 등 다수의 전문가들은 복수는 자연스러운 열망이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어떤 방식으로든 복수심을 분출하거나 풀지 않으면 ‘심리적 독소’가 생겨나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

복수에 대한 열망을 사소하고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김소영(가명·27·여) 씨는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에 갔다가 불쾌한 일을 당했다. 주문을 하려고 주인을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을 하지 않는가 하면 20분이 넘게 걸려 나온 음식 접시를 테이블에 던지듯이 놓았다. 김 씨는 탁자에 놓인 양념통에 몰래 물을 가득 부어 놓는 방식으로 사소하게 복수했다. 회사원 조민형(가명·33) 씨는 매주 금요일 밤마다 회식을 강요해 토요일 아침까지 1박 2일로 술을 먹이는 부장에게 복수하려고 직원들과 모의했다. 폭탄주 제조시 자신들은 양주와 맥주 비율을 1 대 9로 섞고 부장에게는 9 대 1로 섞은 ‘핵폭탄주’를 몰래, 계속 만들어준 것. 이미 취한 부장은 ‘맛이 좀 이상하다’면서도 계속 들이켜다 1시간 만에 만취해 택시에 실려 갔다. 김수정 씨(30·여)는 공용 수도 요금을 실제 나온 요금보다 5000원 이상 더 받아 챙기는, 아래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집 방바닥에 아령을 던지는 방식으로 층간 소음을 유발했다.

사소한 복수는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정신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종민 인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소한 복수가 복수심을 모두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더라도 단기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해결책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 피의자와 같이 쌓인 복수심을 한 번에 터뜨리는 사람들은 ‘골탕 먹이기 식’의 작은 복수조차 실행하지 못했던 소심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의 아주 사소한 복수는 개인에 따라서는 범죄를 막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라고 했다.

○ 상상하고 불쌍히 여겨라

사소하다 못해 유치한 복수에도 ‘만에 하나’라는 위험은 도사린다. 상사에게 복수하려고 커피에 침을 뱉다가 그 현장을 들켰다면, 장난스러운 부하 직원의 소심한 복수에 상사가 죽자고 달려들 1%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직 판검사들에 따르면 상사가 해당 직원을 고소할 경우 형법상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재물인 커피의 효용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침에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섞여 있으면(직원이 질병에 걸린 상태라면) 상해 혐의 적용도 가능하다.

의도적으로 층간 소음을 유발한 경우는 어떨까. 이 사실을 안 집주인이 “법대로 하자”고 나온다면 경범죄 처벌법의 ‘악기, 라디오, 텔레비전, 전축, 종, 확성기, 전동기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을 처벌한다’는 조항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한 판사는 “경범죄 처벌법은 세상의 행위 중 죄가 안 되는 게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이라며 “장난에 가까운 행위 때문에 고소를 당하면 대부분 무혐의 처분되겠지만, 자칫 경범죄 처벌법이 적용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등에 처해질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완전한 경범죄’를 저지를 자신이 없다면 사소한 복수라도 포기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실제로 복수하지 않고서도 복수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올드보이의 이우진(유지태) 오대수(최민식)처럼 복수에 인생 전체를 걸었다가 결국 상대방과 함께 ‘팀킬’당하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도 복수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방법은 상상기법, 즉 ‘복수 시뮬레이션’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가 복수하고 싶은 상대방에게 실제로 복수하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라고 한다. “그 사람을 때려요. 얼굴에서 피가 흘러요. 그 사람에게 온갖 욕을 퍼부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후려쳐요. 온 얼굴이 멍투성이가 돼요….”

정신과 전문의인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환자는 상상으로나마 마음껏 복수한 뒤 후련함을 느끼는 한편 상상이지만 상대방에게 너무 잔인했던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상상으로 복수심을 표출하다 보면 복수심 자체가 줄어들고 환자도 자신을 괴롭히던 복수의 열망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수의 대상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해결책으로 꼽힌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은 “자기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불행하거나, 무시받는다고 느끼거나,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을 차라리 불쌍하게 여기는 연습을 하는 것도 복수심을 떨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부장#직장 생활#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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