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속 나이트클럽, 이삿짐 박스에 쓴 메모… 소외된 중진, 묵직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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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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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히든 트랙’전
50,60대 작가 19명 저력 재조명

한국 미술계를 지탱하는 50, 60대 작가를 조명한 ‘히든 트랙’전에서 사진가 강홍구 씨가 빈 박스를 쌓아올린 작품을 선보이는 등 19명의 작가가 창작 욕망을 공개했다. 고미석 기자mskoh119@donga.com
한국 미술계를 지탱하는 50, 60대 작가를 조명한 ‘히든 트랙’전에서 사진가 강홍구 씨가 빈 박스를 쌓아올린 작품을 선보이는 등 19명의 작가가 창작 욕망을 공개했다. 고미석 기자mskoh119@donga.com
전시장 구석에 ‘스타 클럽’이란 번쩍이는 네온 간판이 달려 있다. 실내로 들어가는 순간 귀청을 때리는 댄스음악과 함께 휘황찬란한 조명이 쏟아져 들어온다. 미술관에서 나이트클럽으로 순간 이동을 한 듯 춤출 수 있는 넓은 공간, 탁자와 의자도 마련돼 있다. 흥겨운 노래와 조명에 혼이 빠져 있는데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환한 불이 들어온다. 다시 불이 꺼지면서 벽면에 그려진 우주 별자리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중구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열리는 ‘히든 트랙’전에 나온 노상균 씨의 설치작품 ‘스타클럽’이다. 정신없이 분주히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반짝이(시퀀)를 활용한 평면과 입체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나 싶게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난 신작이다.

초빙 큐레이터 김성원 씨(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기획한 이 전시는 국내 미술계에서 소외된 50, 60대 중견 작가를 재조명하는 세대별 작가전이다. 미술관 측은 신진 작가를 조명한 ‘SeMA Blue’전에 이어 ‘SeMA Gold’란 제목으로 격년제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올해는 노상균 씨를 비롯해 고낙범 오형근 윤동천 윤영석 육근병 조덕현 최민화 홍명섭 황인기 씨 등 19명이 참여했다.

‘히든 트랙’이란 정규 음반의 신곡 사이에 미발표곡의 일부나 독특한 사운드를 제목도 없이 수록하는 것을 뜻한다. 자유나 유희를 상징하는 히든 트랙이란 말처럼 작가의 이미 알려진 대표 작품이나 정형화된 양식에서 탈피한 작업을 만나는 전시란 점이 흥미롭다. 8월 26일까지. 02-2124-8800

○ 고정된 이미지를 벗다

반짝이(시퀀) 작업을 해온 노상균 씨는 ‘스타클럽’이란 나이트클럽을 꾸몄다.
반짝이(시퀀) 작업을 해온 노상균 씨는 ‘스타클럽’이란 나이트클럽을 꾸몄다.
전시의 공통된 주제나 이슈가 없는 대신 개별 작가의 작품세계에 익숙한 관객에게 새로운 발견의 재미를 안겨 준다. 절제된 추상회화를 선보여 온 문범 씨는 고대의 도서관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름을 따온 ‘알렉산드리아를 떠나며’란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박물관 진열장같은 공간에 놓인 일상의 사물과 그에 대한 설명은 아귀가 전혀 맞지 않아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인류 지식과 지혜에서 비롯된 생활방식과 사고체계를 떠나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업이다.

전시장에 높게 쌓인 종이박스는 사진작가 강홍구 씨의 ‘이사-2012’란 설치작품이다. 56년생 작가는 지금까지 해 온 32번의 이사를 떠올리며 이삿짐 쌀 때 쓰는 빈 종이박스에 간단한 드로잉과 글을 기록했다. ‘1956년 증조부 때 지었다는 집에서 태어났다’, ‘목포시 죽교동 집, 아버지가 쓰러져 객지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등 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동 세대의 삶과 교감 가는 대목이 많아서 울림을 준다.

홍성도 씨는 조각가로서 지금까지 해 온 중량감 있는 작품 대신 무게를 뺀 작품에 도전했다. 베개 모양의 투명하고 가벼운 풍선을 이용한 작품에선 시각적 경쾌함이, 휴지 면봉 티백 볼펜을 꽂을 수 있는 실용적 풍선에선 만화적 상상력이 느껴진다. 그물과 나팔꽃을 이용한 임옥상의 설치작품 ‘하늘타기’, 철과 안료를 이용한 이기봉의 회화 ‘나비-옐로우’ 등도 눈길을 끈다.

○ 중견의 저력을 보다

전시장 입구의 벽면에 큼직한 활자로 제작된 ‘THE END’란 단어가 돌출돼 있고, 공중엔 풍선에 매달린 중년 남자의 모습이 설치작품으로 매달려 있다. 안규철 씨의 ‘불완전한 비행’이란 작품이다. 인생 중반기에 밀려 오는 불안감과 위기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은 원로와 청년 작가 틈새에 낀 중견 작가들의 처지와도 겹쳐지는 듯 보인다.

김용익 씨는 1990년대 제작한 자기 그림을 명주 수의로 감싸고 그 위에 미술의 본원적 정의에 대한 질문을 담은 글을 덧붙였다. 화가 김지원 최진욱 씨의 작업도 참신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청년 세대를 압도하는 실험정신과 도전이 빛을 발한다. 새로운 시각적 표현 양식에 대한 욕구를 창작의 동력으로 활용한 작업에 30여 년 활동해 온 중견 작가의 성취와 내공이 오롯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서울시립미술관#히든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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