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만리장성 늘이며 조여오는데 정부는 中언론 통해 동향파악… 대응 부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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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토론회 “북한 청천강까지 확대 조짐”

12일 열린 ‘중국의 역대 장성 발표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이종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가운데 이야기하는 사람)가 중국의 동북지역 장성 유적 조사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만리장성을 북한 쪽으로까지 확장하는 중국의 역사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 협력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2일 열린 ‘중국의 역대 장성 발표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이종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가운데 이야기하는 사람)가 중국의 동북지역 장성 유적 조사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만리장성을 북한 쪽으로까지 확장하는 중국의 역사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남북 협력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근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이 역대 만리장성의 총길이를 2만1196.18km로 늘여 발표하면서 만리장성이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에까지 뻗은 것으로 주장한 데 대해 국내 학자들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본보 7일자 A2면 고무줄 만리장성… 中, 고구려-발해땅까지 연장

동북아역사재단은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재단 대회의실에서 ‘중국의 역대 장성(長城) 발표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사회를 맡은 이성제 재단 연구위원은 “중국이 1987년 만리장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밝혔던 만리장성의 내용, 의미, 성격을 바꾸면서까지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부합하는 상징물로 바꿔 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1987년 만리장성을 ‘동쪽의 허베이(河北) 성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의 간쑤(甘肅) 성 자위관(嘉욕關)에 이르는 약 6000km의 군사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했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이 밝힌 장성에 고구려 천리장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지린(吉林) 성 지역과 발해의 장성으로 판단되는 헤이룽장(黑龍江) 성 지역이 포함된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이종수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중국의 동북지역 장성 유적 조사 현황’ 발표에서 “요동지역에서는 만리장성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중국학자들은 ‘그간의 조사 현황을 볼 때 만리장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하면서 선을 긋는 실정”이라며 “미리 설정된 장성 노선에 자료를 끼워 맞추려는 중국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중국은 장성의 동단을 북한의 청천강 유역까지 확대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남북한 협력 연구를 통해 중국의 역사 도발을 저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의현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만리장성 동쪽 기점, 산하이관인가, 압록강인가’ 발표에서 “중국이 말하는 장성 개념이 자꾸 확대되고 있다”며 “과거엔 약 6000km라고 했으나 최근에는 주요 거점과 거점, 그리고 그 사이의 군사시설물, 봉수대 등을 임의로 이어놓고 장성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남 교수는 “최근 중국이 신강과 헤이룽장 무단장(牡丹江)에 장성의 흔적이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과거 이 지역을 통치했던 고구려나 발해 또는 금나라가 세운 도시 방어용 성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만리장성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학계의 장성 연구 동향 변화’를 발표한 홍승현 숙명여대 강사는 “1994년부터 중국 학계에서는 장성을 선이 아닌 수많은 점의 연결로 보기 시작했고 이후 중국학자들이 모두 이 관점을 따르기 시작했다”며 “중국이 이 장성 선을 국경선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재단 측은 중국의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 접근이 대단히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중국의 만리장성 늘이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 만리장성 연장은 중국 국가문물국이 공식 문서로 밝힌 게 아니어서 재단에서는 중국 인터넷 자료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상태”라며 “국가문물국에서 공식적인 내용을 밝혀야 재단에서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열 연구위원도 “재단은 중국의 언론 보도나 기관 홈페이지 등을 매일 모니터링한다”며 “우선 인터넷을 통해 파악하고 있어 이를 중국 공식 입장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기관이 중국의 연구 동향을 인터넷으로 파악하는 데 그치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한 역사학 교수는 “재단 출범의 목적은 중국의 역사 연구 동향을 미리 파악해 이런 문제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인데 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고구려#발해#만리장성#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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